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뽕 (문단 편집) === 반작용 ===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민족주의와 집단주의가 한국 경제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도 내고 있었다. 수입산에 비해 품질면에서 열등해도 이른바 [[신토불이]]를 내세워 국산품을 애용하도록 장려하는 식. 외국산물품에 대한 관세와 규제도 아주 심했다. 때문에 서구의 [[개인주의]]와 필적하거나 혹은 개인주의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보완적 성격을 지닌 훌륭한(?) 이념으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당시 출간된 책에서도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송병락ㆍ이원복의 <한국 · 한국인 · 한국경제>, 동아출판사, 1993을 보면 정부와 기업 그리고 기업 각 구성원이 하나의 이해 관계를 바탕으로 구성된 동양적 대기업이 서구형의 대기업보다 우월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근데 사실 이 동양적 대기업이라는 것은 직전까지 잘나가던 일본 기업을 지칭하는 측면도 컸을 것이다. 심지어 서구에서도 당시엔 일본식 [[관료제]]를 긍정하는 이들이 있었을 정도니. 하나 1990년대 들어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자 이런 말은 쑥 사라지게 된다. 한편에서는 일방적인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에 대해서 지식인들 중심으로 비판,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소수 의견으로 묻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냉전 구도가 허물어지고 민주,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반전되기 시작한다. 경제적으론 특히 [[1997년 외환 위기]]가 기점이 되었는데, 외환 위기는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부의 잘못된 금융 정책으로 인한 영향이 컸으며, 위기 동안 드러난 정경유착의 비리들과 정부의 후원에 기댄 방만 경영의 붕괴 등으로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급감하였다. 덕분에 이미 90년대 초부터 X세대란 말 등이 떠오르는 가운데 [[개인주의]]가 이전보다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이미 개발도상국을 벗어나게 되어 예전마냥 무조건적인 서민,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기도 뭐한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마냥 [[집단주의]]나 [[애국|애국주의]]만 강요하는 사회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21세기 국뽕이나 [[환빠]]에 대한 반감으로도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그간 TV나 신문 등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던 애국적 성과나 자국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 조장 등이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희석된 측면도 컸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은 해외와 소통하면서 언론과 미디어가 그동안 전달한 내용 중 실제 내용과 괴리된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에 국수주의에 대한 불신감도 늘어갔다. 인터넷 외에도 직접 해외에 나가서 살거나 일정 기간이라도 거류하는 한인의 수가 폭증한 점 역시 영향을 미쳤는데, 불과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해외 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극소수였다. 어찌보면 당연한게 개인의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허용되기 시작한 년도가 1989년부터였다. 지금은 대학내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서 외국인 친구를 만드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 불과 2~30년 만에 세상이 뒤집힌 듯한 차이가 생겼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일본문화 개방이 이뤄지면서 국내의 각종 문화 컨텐츠들이 사실은 일본의 것을 표절했거나, 애초에 일본에서 만들어졌음이 드러난것도 있었다. 또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무조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행태에 반대하는 소위 교양인을 자부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 점도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무엇인가를 너무 과장해서 선전하는 것들에 대한 반발도 일어났다. 그냥 조용히 사실만 전달해도 괜찮은 것들을, 진실인지 검증되지 않은 내용조차 설이 아닌 진실이라고 편파적 선전을 하거나 과장을 하고 있는 부분 역시 많은데, 이런 부분들은 이전부터 계속 내리쌓여온 국가적 프로파간다가 민간으로 내려오며 문화적으로 확대재생산된 성격들이 짙다. 또 이웃 국가와의 무조건적인 비교에 열을 올리는 문화도 심리학에서 볼 수 있는 민족 집단간의 배척과 우월감 조성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 측면에 속해있는 어쩔 수 없는 고약한 측면은 있지만, 그러한 고압적인 태도에는 어떠한 이성적인 당위적 논리나 외교적 이익도 기대할 수 없다. 한국사에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처럼 다른 문화권도 비슷한 사실들이 있으며, 역사에서의 공과 과는 어느 나라든지 다 있기 마련인 것을 침소봉대하여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이를 즐기는 것은 서로간 신뢰 훼손과 폐해만이 남을 뿐이다. 물론 보통 주류 학자들은 세계 학회에서의 활동도 있고 해서 왜곡에 잘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해석만을 반복할 경우 좋지 않은 일을 일으킬 수 있는 불씨들이 쌓일 수 밖에 없다. 국뽕은 비합리적인 자국 찬양과 타국에 대한 헤이트스피치, 혐오성 게시글을 올리면서 자신들이 애국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더구나 이런 역사관에는 수직적인 세계관이 상당히 많은데, [[세계사]]를 공부하면 알겠지만 하도 온갖 일들이 있다 보니 국사에서도 세계사적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까지 부끄러운 일들도 얼마 없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다른 나라들이 방패로 작용하는 구석 위치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은 자주적인 시대를 보내는 것이 쉬운 편은 아니었다. 소위 선진국들도 다수의 경우 역사를 통틀어서 보면 타국에 침략당하거나 기타 본인들만의 흑역사를 보내는 등 마냥 자랑만 할 순 없는 시대를 보내기도 했다. 유럽의 경우 로마 이후 전성기 오스만 같은 경우를 빼면 압도적인 슈퍼 파워 수준의 국가가 많지 않았기에 외교 타기에 따라 자주성을 가지는 것도 가능했으나 동양의 경우 통일 중국이 체급상 압도적이라 저항이 불가능에 가까운 데다가 칭신한다면 뿌리치기 어려운 경제적 이득도 따라왔기에 중국과의 형식적인 군신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당장 동남아에서 골목대장 노릇 하던 베트남도 중국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격퇴하고도 굳이 칭신하고 조공 관계를 유지했으며, 국까 일뽕들이 자주적이었다고 선망하고 우익 성향 일본인들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이었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일본의 다이묘들도 실은 명에게 조공하려 안달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다. 즉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사가 있었다. 따라서 딱히 극단적인 반응과 왜곡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한민족에게 불리한 사실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며 귀를 막고 자신들의 독선적인 국수주의 주장만 강요하고 우기는 사람들 때문에 국뽕에 대한 반감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불리한 사실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서구 유럽의 대표 주자인 프랑스, 영국을 봐도 로마 제국이 문명을 야만인인 자기들에 문명을 전수했다는 사실에 반발해 프랑스에서 [[베르킨게토릭스]] 등을 띄우는 일이 일어난 적이 있으며,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당시 영국 지배층과 대중들이 요구하는 분위기에 따라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 사실과 다르게 로마 황제가 영국 점령을 시도하다 패배하는 글이라던가 [[백년전쟁]] 때 [[잔 다르크]]가 마녀였는데 영국이 고전했다가 결국엔 그녀를 처치해서 이겼는데 교황청의 중재로 프랑스랑 평화협정을 맺어 전쟁을 끝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