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돌격대 (문단 편집) === 무장 === 제일 큰 문제는 [[무기]]였다. 당연히 장비 보급은 형편없어서 정규군 쓰기도 부족한 [[MG42]]나 [[MG34]]는 사실상 지급할 계획 자체가 없었고[* 문서 맨 윗사진에 나온 국민 돌격대원들 중엔 MG34를 든 남성도 여럿 보이는데, 시기가 44년 11월이라 이건 국민 돌격대 차출 초기이기도 하고, 괴벨스가 직접 사열한 거라 선전상 무장을 좀더 충실히 쥐어줬던 것 같다.] 대부분은 [[폭격기]]용으로 생산되었으나 폭격기가 쓸모가 없어진 상황이라 놀리게 된 항공기용 기관총 [[MG30|MG15]]나 과거 [[제1차 세계 대전]]때 쓰던 수랭식 [[MG08]]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지급할 계획이 없었다.[* 이때까지는 MG08의 면허생산형인 24식 중기관총이나 같은 맥심 계열인 PM M1910, [[빅커스 기관총]] 등이 여전히 군용으로 쓰였으므로 이런 거라도 지급받으면 그나마 좀 나았다.][* 다만 기록으로 남은 사진 중 MG34를 들고 있는 사진들도 간간히 보인다. 죽은 독일군 시체나 방기된 참호 혹은 군수창고에서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 소총도 부족해서 [[Kar98k]], [[StG44]], [[게베어 43]], [[MP40]] 등의 제식 총기는 정규군 수요도 맞추기 턱없이 부족한 양이어서 노획한 총기나, 과거 1차 대전 때 쓰이던 구식 [[게베어 1898|Gew98]], [[MP18]][* 여기까진 그나마 [[군사경찰]] 등 후방 주둔 정규군 일부도 쓰던 물건이거나 정규군의 물건에 비해 성능은 별 차이가 없으므로 차라리 나았다.], 한참 전에 성능이 별로라 사용하지 않았던 [[게베어 1888]], 그리고 또 그 전에 사용했던 단발식인 [[게베어 1871]]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9×19mm 파라벨럼]]탄이나 22구경 탄환 등을 사용하는 민간용 [[엽총]]과 산탄총도 징발 혹은 소유자가 소집시 자체 구비하여 사용하였으나, 이것도 턱없이 부족하여 품질이 조악한 각종 [[국민돌격대 소총|국민돌격대 소총(VolkssturmGewehr, VG)]]이라는 국민돌격대용 급조 병기가 만들어졌다. * VG-1 소총은 10연발 [[탄창]]이 달려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반자동 소총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밑의 VG-5과 같이 볼트액션 소총이다. 탄창은 [[게베어 43]]에서 쓰이던 탄창으로써, 어디까지나 재고로 쌓여있던 G43 소총의 탄창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VG-3은 [[StG44]] 탄창을 재활용한 볼트액션 소총이다. 그리고 상단 사진의 하부에 있는 [[게베어 1898#폴크스슈투름카라비너 (VK)|VK-98]]은 다른 이름으로는 VG-5인데, Gew98의 극단적인 간략화 버전으로 탄창 따위는 없고 그냥 1발 쏘고 장전하는 식이었다.[* 단 VG-5는 그 짧은 시간에 만든 물건 주제 바리에이션이 좀 있어서 외형상으론 단발형과 동일한데 내부에 5발 들이 탄창이 있는 물건도 존재한다.] 불량 부품까지 때려넣은 것도 모자라, 가늠자-가늠쇠도 소총이 아니라 권총 수준이다. * [[MP3008]]은 [[스텐 기관단총]]을 강하게 참고해서 만든 기관단총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오히려 더 개악한 물건이었다. MP3008은 그래도 '강하게 참고해서' 만든 수준이지만, '포츠담 장비'라고 해서 대놓고 스텐을 거의 그대로 베낀 장비도 있었다. 얼마나 똑같이 베꼈는지, 독일이 패망한 뒤 연합군이 '포츠담 장비'들도 다 똑같은 스텐 기관단총인 줄 알고 회수해 버렸고 남은 건 생산 직원이 가지고 있다가 공개한 1정이 전부이다. * [[MP507|VG 1-5]]은 다른 급조병기와는 달리 반자동 소총으로 다른 물건들 보다는 확실히 괜찮은 무기였다. StG44용의 탄약과 탄창을 사용하였지만 국민돌격대가 30발이 넘을 만큼 탄약을 지급받을 일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대부분의 국민돌격소총들은 남아도는 공군용 기관총 총열[* 전쟁 후기에 [[루프트바페]]는 사실상 사라졌다. 기관총을 달 항공기가 없으므로 이 총열들은 그저 재고 물자에 불과했다.]을 사용해 만들었다. 이 과정 역시 크나큰 병크가 아닐 수 없는데, 총기에서 가장 비싼 부속은 총열이고 그 중에서도 기관총 총열은 더욱 비싸고 성능이 뛰어나다. 이런 물건을 갖고 장난감 같은 싸구려 볼트액션 소총을 만들 게 아니라 나머지 부속은 급조해서라도[* 신뢰성만 어느 정도 확보한다면 편의성은 희생할 수 있는 상황이니만큼.] 기관총(자동 화기)을 한 정이라도 더 만들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이다. * 여기에 더불어 아예 부무장마저도 저가형으로 생산하려 했는지 [[국민권총]]이라는 물건도 만들어냈다. 더구나 국민돌격대 전용의 저가형 총기들 역시 생산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권 다툼이 발생하는 바람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지방 [[나치당]] 지도자와 그 당수가 후원하는 기업체들끼리 자재를 사이에 두고 싸우고, [[독일 국방군]]을 위한 생산 시설을 멋대로 뜯어가는 등의 실책을 연발한 끝에 제대로 생산조차 못 하고 국방군을 위한 무기 생산까지 차질을 빚게 만들었다. 제식도 아닌 온갖 외국제 [[노획]], [[약탈]] 무기들도 지급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7_tCAbHlKJs)]}}} || || [[Forgotten Weapons]]의 리뷰 || *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하면서 얻은 [[카르카노]] 소총 등을 독일의 7.92mm탄을 쓸 수 있게 개조하기도 했는데, 약 15,000정이라는 꽤 많은 숫자가 개조되었으나 기존 엔블록 클립에 7.92mm 탄이 맞지 않아서 클립을 쓸 수가 없었고[* 클립도 7.92mm에 맞춰 새로 생산하려는 계획이 있긴 했으나 1945년의 독일에게 그런 개발 및 생산은 사치였다.] 총열을 억지로 넓히고 반동이 강해지면서 명중율은 극악으로 떨어진 단발총이 돼버렸다. * 기타 여러 점령지에서 징발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대로 조달했으며, 그 중에는 덴마크군의 [[크라그-에르겐센]]과 폴란드군의 [[M1918 브라우닝#Wz.28|RKM wz. 1928]], 프랑스군의 [[르벨 M1886]] 또한 있었다. 당시 일부 북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7.92mm 마우저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손쉽게 노획하여 무장할 수 있었다. 물론 탄약을 날릴 수 있는 물건이라면 뭐든 써야 했기에 8mm 르벨 탄을 쓰는 프랑스제 소총처럼 마우저탄이 아닌 물건들도 많이 노획되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런 노획 무기도 보급 1순위는 정규군이었는데다 이미 많은 숫자를 손망실해버려 실제 지급은 개미 눈물만큼 이뤄졌다. 덕분에 국민돌격대는 무장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판처파우스트]] 같은 대전차화기는 비교적 충분히 지급되었다. 말하지만 '''비교적'''이다. 이것도 선전사진 찍을 때는 근처 군 부대에 빌려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만 판처파우스트를 들어서''' 그 숫자가 많게 보이는 훼이크를 썼다고 한다. 물론 촬영 끝나면 반납. '''잘 보면 사진 뒤편의 잘 안보이는 군중들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국민돌격대보다도 가치가 낮게 평가되던 [[히틀러 유겐트]]조차 이거 들고 베를린 전투 때 소련군 전차에 잘만 쏴댄 걸 감안하면 지급은 된 것 맞다. 다만 소련군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내야 하는 동부전선의 상황은 나은 편이어서 국민돌격대 인원들도 멀쩡한 Kar98K 소총이나 MG42 등 그들 기준으로 꽤나 중무장한 사진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부전선에서 소모되는 병력수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이것도 사망한 정규군의 무기를 쥐어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육군도 모자라 국민돌격대를 태워 연합국 공군을 물리친다는 계획하에 국민전투기라는 발상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제트기 [[He 162]]로. 시제기가 나오고 전투비행단도 하나 꾸렸지만, 정작 이 기체는 국민돌격대가 몰기엔 난이도가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에, 일부 유소년기에 항공 클럽 등에 가입했던 일종의 예비 조종자원인 [[소년병]] 몇을 빼면 그냥 정규 공군에서 운용했다. 국민전투기에 대한 자세한 내역은 [[http://airwarfare.cafe24.com/frame1.htm|불타는 하늘 - 그레이트 워 플레인 - 독일공군]] 항목의 He162 항목을 참조하도록 하자.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데는 '''나치당과 [[아돌프 히틀러]]의 전쟁 실패에 따른 패착이 누적된 것이 가장 컸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듯 나라가 다 망한 시점에서도 지방 정당 지도자(가우라이터 Gauleiter)와 군수기업체, 지방 유지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갖은 실책을 거듭한 탓에 생산 가능한 무기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국민돌격대의 무장 자체가 실현되지 못했던 것. [[결과는 좋았다|어떤 의미로는 덕분에 독일인이 훨씬 덜 죽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한심한 일이었다.]] 만약 국민돌격대에 충분한 무기가 주어졌다면 도망칠 명분조차 없으니 계속 싸워 경험을 쌓아 나가야 했을 테고, 반대로 조직도 엉망이고 수적으로도 적에 밀리는 상황이라면 적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아군의 군수 지원 능력에만 부담을 주어 독일 국방군 전체의 몰락을 몇 달은 더 앞당기는 한편, ''''훨씬 많은 전사자와 더불어 멀쩡한 [[독일인]] 민간인 대부분과 [[독일]] 국가를 [[나치]]의 만행으로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소련군]]과 [[연합군]] 및 [[유럽인]]들의 훨씬 더 가혹한 처분에 넘겨주었을 가능성조차 충분하다'''. 물론 무장이 잘되어 있었다면 민간인의 퇴로 확보에는 문제 없었을것이다. 국민돌격대도 일단 투입되면 적군에게 희생을 강요할 능력은 됐지만[* 다만 장비 면에서 뒤지니 전투력 같은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쪽은 소대단위로 판처파우스트 한두 개 들고 있는데 미군은 보병 소대에 전차 두세 대, 많으면 5대이상씩 배속되어 합동작전을 펼치니 죽일 수는 있는데, 피해 교환비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술된 대로 미군 10명 죽이고 국민돌격대 중대 전멸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고로 이 때 희생되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조기 석방된 서방 지역 억류 독일군 포로들[* 실제로 서방 측은 전쟁범죄자만 아니면 독일군 포로들을 의외로 쉽게 풀어줬다. 물론 프랑스나 덴마크처럼 [[공밀레|독일 포로들을 전후 복구에 적극 동원하여 이거 저거 건설한 사례도 있긴 하다.]]] 및 종전으로 포로가 되지 않고 그냥 군대 해산과 함께 전역한 이들과 더불어 [[연합군 점령하 독일|전후]] [[서독|독일]] [[동독|사회]]의 주축이 되었고, 나중에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