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돌격대 (문단 편집) ==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 그리고 이런 국민돌격대의 수요가 실제로 제기된 것이 1944년 말이다. 1944년 11월까지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총 누적 영구손실 500만을 입어, 이때까지 동원한 전 남성 인구의 1/3 가까이가 죽거나 부상당하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다.''' 일단 1944년 11월까지 독일이 동원한 총 인구는 약 1,200~1300만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전체 독일인 사망자 중에 군인 전사자, 기타 사망자[* [[소련군]] 포로가 되었다가 티푸스에 걸려 죽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포로 8만여 명도 당연히 여기 포함된다. 참고로 연합국 포로가 된 뒤 사망한 독일군은 1950년대 중반 석방이 완료될 때까지 3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4분의 3이 소련군 포로 사망자들이다.]와 실종자만 270만여 명에 달했으며[* 2차대전 전체 사망자는 43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독일 본토의 민간인 사망자는 주로 폭격 사망자 위주로 50만 안팎이다. 군 사망자와 실종자. 포로 사망자는 전쟁 전체를 통틀어 320만여 명. 그리고 나머지 60만 명은 해외 거주 [[독일인]]들이 점령지역의 전쟁통에 피살되거나 현지인들의 보복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영구장애를 가진 사람과 부상자를 합하면 650만 명. 이 중 100만 이상이 아직 동원 상태에 있었는데 그 중에는 심각하지 않은 영구 장애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포함됐다. 사실 상 이제는 군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한 나라의 남자 씨가 마르기 직전에 이른 셈이었다. 현재 동원이 유지되고 있는 인원은 이렇게 해서 사망, 실종자, 심각한 영구장애인과 중상자 빼고 650만이었으나, 이중 군인으로서 동원 가능한 인구는 이제 300만 이하였다. 그나마도 계속 빠른 속도로 전 전선에서 병력이 소모되어 1945년 즈음에는 대부분이 사상자가 되어 사실상 병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제 1945년까지 [[독일군]]은 무리한 전투 와중에 동서 양쪽에서 연합군에 추가 인명 손실을 꽤나 강요했지만 그 대가로 50만여 명의 전사자를 더 냈는데, 부상자 비율까지 감안하면 남는 병력이 없게 된다. 1945년 4~5월 시점에 연합군이 상대한 독일군 대다수가 국민돌격대와 이미 장년층이 된 30대 후반 예비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게 그 증거다.] 이 상태에서 괴벨스 이하 일부 급진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이 바로 모든 남성을 총동원해서 전쟁터에 내보낸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미 독일은 전체 남성 인구 3,500만 중 1,300만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다가 손실된 상태였다. 독일의 고령화 비중이 7%였고, 유소년 비중은 대부분의 국가가 이 때 20~23% 안팎이니까 3,500만 명 중 생산가능인구는 3분의 2 조금 넘는 2,500만 명. 이는 성인이 된 독일 청년들 중 30세까지의 청년층 중에 30% 안팎의 병역부적합자를 제외한 인원이 당연히 전부 포함됐고 그 외에도 30세 이상 장년층 중에 상당수가 들어가 있었다. 수적으로는 1939년 기준 남성 청장년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었다. 나머지는 산업현장 등에서 일 시켜야 하거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전후복구로 써먹거나 해야 할 인력이었는데, 전체 청장년의 70% 정도가 징집 혹은 산업현장 징용대상이었고, 나머지는 국가가 멸망해도 동원할 수 없는 병역 부적합자들이라 애초에 히틀러나 괴벨스조차도 징집대상자에서 논외로 취급했다. 즉 독일이라는 국가가 [[멸망]]할 생각이 없으면 동원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 [[동부전선]]이 펑펑 터지는데도 동원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국가가 망하거나 지속불가능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동원 가능한 청년은 다 동원된 상태였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인데도 전선의 병력은 부족하고 국가는 사실상 패전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1944년 10월 18일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국민돌격대 창설 명령이 떨어졌다. 소집 대상은 '''16세~60세 모든 [[남성]]'''이었으며, 공식적으로는 독일국방군의 일원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돌격대]] 비슷한 [[준군사조직]]이었다. 훈련은 소집지역 인근의 국방군이나 SS, 경찰 등에서 맡았다. 기준은 말 그대로 '''총을 쏠 수 있는가'''로, 면제받으려면 진짜 팔다리가 하나 없거나 시각장애/청각장애가 있거나 아니면 병역 자체를 수행할 수 없는 부적합 수준의 정신질환이 있거나 지병을 갖고 있어야 했다. [[병역판정검사]] 기준으로 보면 보충역까지 해당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국민돌격대는 [[예비군]]조차 아니다.''' 예비군은 이미 20대 남성들 및 30대 중 일부 군복무 경험자들, 그 중에 현역 판정자들로 따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예비군들은 이미 1940년 5월 시점에서 거의 전원 동원된 상태였다. 1944년 말 시점이면 독소전쟁으로 이미 30대 중에서 군복무 경험이 없는 사람들까지 40세 아래이고, 산업현장 노동 등에 필수적인 인력이 아니고, 병역판정검사에서 현역판정이 난 사람들은 싹 다 군에 끌려간 뒤다. 산업 유지를 위해 나머지는 괴벨스가 아무리 정신상태가 이상하다 해도 도저히 징집할 수 없으니까 이제는 40~60대 중에 현역이 가능한 사람들 보고 싸우라는 소리다. 1945년 독일군 보병의 평균연령이 40세인 게 다 이유가 있다. 물론 괴벨스도 처음부터 현역이 가능한 사람만 뽑았으니까 건강상태만 따지면 대부분 현역병들과 큰 차이가 없긴 한데, 왜 이 사람들을 총력전 와중에도 가능한 징집에서 빼는지 생각해보자. 이들까지 죽으면 전쟁 끝나고 나서 국가 산업 돌릴 인력이 없으니까 빼는 것이다. 현대 한국식으로 비유하면 국민돌격대는 민방위까지 전부 동원된([[국민척탄병]]) 상태에서 민방위까지 끝난 사람들 중 60세 이하와 중고등학생들까지 신체검사한 뒤 4급 이상 판정이 나온 남성들 전원을 끌어다가 군복도 제대로 안 주고[* 준다 해도 우드랜드패턴이 아닌 옛날에 쓰던 민무늬 군복이나 교련복을 지급하고] [[K2 소총]]이나 [[M16A1]]도 아닌 사냥용 엽총이나 [[M1 개런드]], [[M1 카빈]] 같은 총을 주고 탄창 두세개에 실탄 좀 채워서 가서 적과 싸우다 죽으라고 닥치고 내몬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일본의 [[결호작전]]에 동원될 [[국민의용대]]는 엽총도 아니고(그런 건 1,2,3차병비동원으로 동원한 병력에게 쥐어주기도 모자라서) 쇠파이프에 식칼 묶어서 창이라고 주거나 죽창을 주는 레벨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싸울 수는 있지만, 어차피 개죽음인 건 물론이고 전쟁 끝나고 나서 공장 하나 돌릴 인력이 남지 않으면 그게 바로 [[국가 막장 테크]] 직행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농담도 나왔다고 한다. >Q: 국민돌격대가 귀중한 자원인 이유는? >A: '''머리카락은 [[은]]이고(백발), 이는 [[금]]이며(금니), 사지는 [[납]]이기 때문(노인들이니 사지가 무거움)이지!''' 국민돌격대가 60세 이하 중장년들도 전선에 내보내자 중장년층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돌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전선에서 적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시 돌격대 면제!''' 급기야는 '''[[독일인|독일 국민]]은 전원 [[전투병]]'''이란 정신나간 선언까지 나와버린다. 여기에 후퇴하면 적전도망으로 사살한다는 명령까지 내린지라, '''[[피난민]]=[[탈영병]]'''이 되어 피난민이 되면 아군에게 사살당하고 전쟁터에선 적군에게 죽는 상황이 되고 만다. 동부전선의 국민돌격대원들은 자기가 [[항복]]하면 남성을 비롯한 어린 자식들은 [[학살]]당하고 [[아내]]와 [[딸]], [[누이]] 등 독일 [[여성]]들은 [[강간]][[귀축영미|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당시 독일 상층부는 Sieg oder Sibirien(승리 아니면 [[시베리아]][[굴라그|다]].)'라는 극단적인 구호까지 내세워서 소련군과의 전투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독려하는]] 판이었고, 연일 날아오는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소식을 접했기에 정규군이나 무장SS와 함께 필사적으로 싸웠다. 소련군 역시 봐주지 않고 독일 정규군 및 SS와 함께 국민돌격대들도 인정사정 없이 쓸어버렸다. 나중에는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하는 말이 나오긴 했다고 한다. 물론 서부전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히틀러 유겐트]]를 비롯한 몇몇 광신자들이 "패배주의자는 [[사형]]"이라며 사람들을 목매다는 일도 벌어졌지만, 대다수는 별로 싸우지도 않고 [[미군]]이나 [[영국군]]에 항복하거나 그냥 [[탈영]]해서 [[민간인]]으로 돌아가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사기가 떨어진 [[소년병]]들을 즉결처분하려는 광신자들인 [[독전대|그라이프 코만도]]들의 행태에 분개하여 국민돌격대 대원들이 그들을 죽이고 소년들을 구출하는 일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총쏘면서 미군들을 사살한 사람이, 총알이 다 떨어지니까 그 자리에서 완장 버리고 민간인인 척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연합군 또한 이런 수작은 참아줄 수 없었기에 이런 경우는 바로 보복을 받았다.[* 웰컴 GI 어쩌구 했다는 말은 실제로는 국민돌격대원이 미군들을 사살하다가 총탄이 떨어지자 원래 끌려나온 민간인이었고 살기 위해 싸운 것이니까 정규군 장병과 사정이 다르니 봐달라고 항복의사를 밝힌 것이 진짜 민간인이 총들고 미군 사살한 것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 나름으로는 군인으로 항복한 것이지, 민간인으로써 갑자기 미군을 환영하는 짓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 [[헤이그 협약]]상 [[교전권]]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식별가능한 표식이 있어야 하는데, 방금까지 총질하다 완장을 떼버리고 민간인인척하면 정당한 전쟁 [[포로]]가 아니라 [[전쟁범죄]]자 내지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게 되므로, 그 자리에서 사살해버려도 전쟁범죄가 되지 않는다. 정규군조차 "항복하는 걸 못봤다" 내지는 "수류탄 던지는 줄 알았다" 하면서 쏴죽여버리고 면피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수작질을 받아주는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아무리 나치가 막장이라도 군복만큼은 가능한 한 입혀보내려고 애를 썼다. 연합군과 싸운, 군복조차 입지 못한 국민돌격대는 포로로 잡히더라도 상당수가 병기와 완장 등만 빼앗기고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일선 부대에선 포로가 너무 많아서 항복하는 정규군에게도 '그냥 무기만 버리고 꺼지라'며 쫓아내는 일이 생길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들었어도 현역 못지않은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없진 않았는데, 이들 역시 미군에게 항복하는 비중이 정규군보다 더 높긴 했지만 대부분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들이 항복한 이유는 싸울 수 없어서가 아니라 무장상태나 동료들 꼴, 보태서 지금 맞서는 미군의 무장을 보니까 어차피 필사적으로 싸워봐야 미군 십여명 죽이는 대신 자신과 동료들이 속한 소대, 중대가 전부 개죽음당하는 게 눈에 보이고, 그렇게 자신이 싸우다 죽거나 장애인이 되면 생계수단이 없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굶어죽을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