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돌격대 (문단 편집) == 배경 == 본래 나치 정권은 과거의 독일 정권 및 국가조직 전체에 대해 비판적인 [[국가사회주의]]가 기반이었으며,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정당 내에서는 독일의 국방 조직인 국방군([[정규군]]) 전체를 척결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애초에 나치 돌격대([[SA]])부터가 예전의 군대는 제국 시절의 잔재이자 부르주아 계급의 앞잡이이므로 국가사회주의 이념으로 뭉친 새로운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창설된 조직이었고 무장친위대 역시 이와 같은 이념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나치는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이라는 정당명과 국가사회주의라는 정당 이념에서 알 수 있듯 사실 이념적 기반을 (마르크스주의와 대비되는 독일 민족적인) 사회주의에 두고 있었다.[* 나치당에는 전직 공산주의자가 여럿 있었다. [[요제프 괴벨스]], [[롤란트 프라이슬러]]는 한때 공산주의자였다.] 이 때문에 당내에 우파와 좌파가 공존하고 있었으며, 우파의 경우 '''유대자본만 기피'''하는 정도인 데 반해 좌파는 '''모든 자본가 및 구체제 엘리트 전체를 증오'''했다. 특히 돌격대는 후자에 가까웠고, 이런 이론적 대립은 돌격대의 수장이던 [[에른스트 룀]]의 숙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장검의 밤]]으로 인해 나치 좌파는 거의 다 숙청당했으나 돌격대의 군편성에 대한 관념은 [[하인리히 힘러]]에게 어느 정도 계승되어 [[슈츠슈타펠|무장친위대]]의 건설에 영향을 주었고, 나치당내에 퍼진 정규상비군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감정과 시민군에 대한 호감에 대한 연원은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19세기 독일 지식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시민군]]이라는 개념이 [[나치 돌격대]]와 [[무장친위대]]로 발현된 것이다.''' * 정확히 말하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도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되면 "스스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자경단"이 "기존 국가의 군대"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근대 말~현대 초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기존 국가의 정규 상비군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있었다. 다만 이는 단순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발상이 아니라 당시 유럽의 정치사회적 구조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군대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관점과는 달리 근대 유럽 국가에서 군대(특히 장교단)는 '''[[군부|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압력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장교(군 수뇌부)는 전통적으로 신사 계급[* 귀족+지주나 자본가 등 부유한 계급.]의 직업이었고,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권위를 가진 엘리트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따라서 정규 상비군의 지휘부 자체가 곧 보수적인 귀족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세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좌파, 또는 좌우파를 막론한 급진주의 세력들은 국가의 군대를 정치중립적인 국가기구로 보지 않고 '구체제-보수파의 무장 조직'으로 여겼기에 급진주의 세력 역시 그에 상응하는 자체적인 무장조직(자경단)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던 것. [[인민군]] 문서에서 설명하듯, 구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군대가 명목상 '[[국군]]'이 아닌 '[[당군#s-1]]'의 형태였던 것 자체가 바로 이 시절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독일]]의 사례에 대해 좀 더 집중해보자면 퇴역 군인들로 구성되었던 우익 민병대 [[자유군단]]의 사례나 독일군 장교단의 산실 역할을 했던 [[융커]]들의 사례도 참고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군대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되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 는 현대 민주주의적 [[문민통제]] 논리와는 달리 군대 자체가 정치적 세력이었던 시대의 논리이며,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유럽에서는 이런 [[군국주의]] 사고방식이 제법 널리 통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치 친위대' 논리의 가장 황당한 지점은, 나치당이 독일의 정규 상비군([[독일 국방군]])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이후에도 유지되었다는 점이라 볼 수 있다. 나치당의 활동 초기, 극단주의 정치운동 세력이던 당시에야 군대를 비롯하여 구체제 엘리트에 의해 통제되는 기존 국가 조직을 신뢰할 수 없다는 관점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 내 좌파를 완전히 숙청하고 [[아돌프 히틀러]] 및 당 내 우파 수뇌부가 기존 체제의 보수주의 엘리트들과 손잡아 독일이라는 국가를 완전히 장악한 이후에는 이 개념이 등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당시 독일군(독일 국방군)은 히틀러와 나치당에게, 최소한 히틀러와 나치당이 통제하는 독일이라는 국가에 충분히 충실한 집단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슈츠슈타펠]]과 같은 [[준군사조직]]을 만든 것은 나치당 요인들이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사병#s-2]]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헤르만 괴링]]은 [[공군 야전사단|공군으로 돌격대나 무장친위대와 비슷한 짓을 하려고 할 정도]]로, 나치 정권에서는 기존의 군부를 대체할 새로운 군을 만들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념적 이유 이상으로 각 분야의 수장들(괴링, 힘러, 룀 등등)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충실히 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념적 이유는 사실은 핑계에 불과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그리고 이런 기존 군부 세력에 대한 불신과 그간 전쟁 수행 및 군사력 확보에 직접 기여하지 못했던 나치당 선전부장 겸 독일 국가계몽/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권력욕이 결합하여, 나치당은 1940년대 초반부터 전국민의 총동원을 근간으로 하는 제5의 군대 창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것이 국민돌격대의 창설 기반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