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립현충원 (문단 편집) === 국가원수묘역 ===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GYH2015112200080004400_P2.jpg]]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908743_image2_1.jpg]] 이승만 대통령의 묘역 [[국립서울현충원]]에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 묘역이 각각 조성되어있고,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965년 세상을 떠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이 묘역에 묻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 사태]] 이후 이 묘역에 묻혔다. 서울현충원에 공간이 부족해지자 [[2004년]] 대전현충원에 8기 규모의 국가원수묘역이 조성되었으며,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위와 같이 마련된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최초로 안장되었다. 그런데 뒤이어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유가족과 지지자들이 대전현충원이 아닌 서울현충원 안장을 요구하며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서울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는 주장은 사실 논리가 정연했는데 첫째로 서울현충원이 만장(滿葬)인 것을 전제로 대전현충원에 국가원수묘역을 추가로 조성한 것이고, 이에 따라 최규하 대통령이 대전에 안장된 선례가 있는데 이 원칙을 뒤집는다는 것, 둘째로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은 우열의 차이가 없고 대등한데 마치 서울현충원 안장이 더 우월한 듯한 외관을 만들어 사실상의 서열을 부추긴다는 것, 셋째로 이미 만장 상태인 서울현충원 경내에 억지로 부지를 확보하려면 추가 공사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직접 유가족 의사를 존중할 것을 지시하여, 서울현충원에 급히 추가 묘역이 조성된 끝에 그곳에 묻혔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0/2009082000034.html|관련 기사]] 건국(이승만) 산업화(박정희) 민주화(김대중)의 상징인 대통령들 3인을 서울현충원에 모시는 것이 합당하다는 여론도 컸다. 그 이후 이명박은 '친서민 중도실용'의 기치로 임기 중반임에도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이후 [[2015년]] [[11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서거하자 민주화의 상징성을 고려해 서울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때는 서울현충원의 공간 부족 문제가 정말 심각하여 아예 따로 떨어진 곳[* 충혼당 바로 옆 언덕]에 새로 묘소를 만들어야 했다. 현재에는 예외적인 묘소를 만들만한 물리적 공간마저 더 이상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과 같은 예외적인 서울현충원 안장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직 대통령]]이 사망 후에 현충원에 안장된다면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될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현충원 안장 자격을 갖춘 전직 대통령은 [[문재인]]이 유일하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대통령을 지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영향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권한이 모두 박탈됐다.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도 이 묘역에 남편과 함께 합장될 수 있다.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으로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육영수]] 여사가 이 묘역에 먼저 안장됐고 1992년 별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가 남편의 곁에 함께 묻혔다. 2004년 세상을 떠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는 별세 당시 고향인 충북 충주에 묻혔다가 2년 뒤 남편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부부가 함께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됐다. 201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별세 후 남편의 묘역에 함께 묻혔다. 현재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 배우자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추후 별세 시 이 묘역에 안장될 수 있다. 대통령 본인의 의사로 이 자리에 안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 [[1990년]] 서거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현충원 안장을 거절했다. 이유는 “박정희 같은 독재자와 같이 묻히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그의 묘소는 고향인 [[충청남도]] [[아산시]]의 가족묘지에 있다. [[2009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시 정부에서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권하였으나, 유지에 따라 화장되어 [[봉하마을]]로 갔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 화장 후 집 앞에 안장해달라고 하여 그것을 따른 것이다.[* 그의 유언대로 묘역 자체는 작은 묘비 하나만 설치되었지만, 봉하마을 주민들과 노 전 대통령 지지자 등 타의에 의해 공원화가 진행되어 역대 대통령 묘역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가장 크다.] 이런 경우 현충원 밖에 있는 국가원수묘지는 보존묘지로 지정되어 국립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준해서 관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