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단 편집) == 역사 == ||<-4> {{{#fff '''국립과학수사연구원 MI의 변천사'''}}} || ||<-1> [[파일:국립과학수사연구소 로고.jpg|width=100%]] ||<-1>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width=100%]] ||<-1> [[파일:국과수 MI(~2016).svg|width=100%]] ||<-1> [[파일:국립과학수사연구원_국_상하.svg|width=100%]] || 언론에 노출된 것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설립연도가 2010년 8월 10일이라 신생 기관으로 보일지 모르나, 1955년에 설립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전신으로 삼는 뼈대와 전통이 있는 기관이다. 간단히 연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fff '''1955년 3월'''}}} ||과학수사연구소의 직제 제정[* 대통령령 제 1021호, 지문감식사무는 치안국 수사지도과 감식계, 법의 및 이화학적 감식사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담당]|| ||{{{#fff '''1962년 1월'''}}} ||직제개정으로 서무과, 법의학과, 이화학과 등 3과 설치|| ||{{{#fff '''1963년 8월'''}}} ||청운동 신청사 이전|| ||{{{#fff '''1977년 2월'''}}} ||의주로 청사로 이전|| ||{{{#fff '''1986년 9월'''}}} ||현 양천구 신월동 청사로 이전|| ||{{{#fff '''1987년 5월'''}}} ||법의학 2과 이화학 2,3과를 신설 6과로 개정|| ||{{{#fff '''1989년 7월'''}}} ||2부 7과 3실로 직제개정|| ||{{{#fff '''1991년 8월'''}}} ||이화학 4과를 신설 7과로 직제개정|| ||{{{#fff '''1992년 5월'''}}} ||운영규칙(내무부 훈령)을 개정 운영감독을 경찰청장이 수행하게 됨(!)|| ||{{{#fff '''1993년 3월'''}}} ||부산 남부분소 개소|| ||{{{#fff '''1996년 3월'''}}} ||현재의 2개부 10개과로 직제개정|| ||{{{#fff '''1997년 7월'''}}} ||전남 장성 서부분소 개소|| ||{{{#fff '''2000년 9월'''}}} ||대전 중부분소 개소|| ||{{{#fff '''2006년 1월'''}}}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 ||{{{#fff '''2010년 9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승격|| 20년 이상 국과수에서 근무한 과장급 인사를 포함한 여러 국과수 내부 관계자의 발언에 의하면, 국과수는 [[대한민국 경찰청]]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그 뿌리는 일제 치안국 산하의 조직이다. 이후 광복과 정부수립, 6.25전쟁을 거치며 [[행정안전부|내무부]] 산하에 독립된 연구원을 따로 개원하게 된 것이 국과수의 모체였으며, 당시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자료를 그대로 물려받았던지라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자료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유명한 기생의 자궁이나 [[백백교#s-2.4|사람의 머리]]가 포르말린에 담긴 채 보관되고 있었다고.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379955|#]] 1960~70년대의 활동내역은 찾아보기 힘든데 이때는 시대도 시대이거니와 [[지문]] 하나만 뜰 줄 알면 대부분 만사OK인 시대라 묻혔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다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국과수도 격변을 맞이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전환점이 87년 [[6월 항쟁]]을 불러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당시 [[부검|부검의]]였던 국과수 황적준 박사가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이겨내고 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밝혀냄으로써 민주항쟁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한 것이 국과수에게도 변혁의 계기가 된 것이다. 국과수가 더이상 정권의 꼭두각시로 행동하지만은 않게 되면서 국과수의 중요성도 점점 커져갔다. 또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보다 전문적인 '''과학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과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사건이 완전범죄로 여겨지지만 사실 과학 수사만 있었다면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2019년 9월 발전된 DNA 분석을 통해서 범인은 [[이춘재]]로 밝혀졌다. [[https://youtu.be/AytVpu6BDBc|#]] 모두가 국과수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정권교체 직후인 1998년 행정부 개편 당시 국과수를 자신들의 산하 부서로 만들려는 각 기관들의 암투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실무자 회의에서 경찰청이 국과수를 가져가기로 합의가 된 상황에서 마지막 국무회의 의결에 들어갔을 때 법무부 장관이 돌연 반대를 했는데, 그 이유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입장에서, 제3의 기관이 아닌 경찰청 산하의 기관에서 나온 자료를 객관적인 증거로 확신할 수 없다. 결국 또 다른 제3의 기관을 만들게 될 텐데, 재원 낭비가 심하다. 경찰청 산하가 아닌 제3의 기관 산하로 만들자'였다고 한다. 결국 이게 통해서 결국 국과수는 행정자치부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승격하였다. 기술적 측면에서, 1980년대 들어 갓 도입된 음성인식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1990년대 들어 유전자 분석, 각종 혈액분석과 감정 등의 국산화 및 타국가 보급을 주도해 국제표준규격의 최첨단을 걷는 등 엘리트 집단이다. 특히 마약류 감식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정확도도 높고, 특히 감정물이 들어와서 정식감정결과가 나오기 전에 간이 검사를 시행하여 결과를 수사현장에 알려줘 빠른 수사에 도움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