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공내전 (문단 편집) === [[양쯔강]] 도하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ffegKUQcaLs)]}}}|| || '''Red Sweep China'''[br]'''공산군이 중국을 휩쓸다'''[br]1948년, 난징으로 가는 길목을 장악하고 남쪽으로 쇄도하는 인민해방군. 고립된 국민혁명군은 미약한 항공 보급으로 버티려 하나 점차 밀리고 있다. || 이후 인민해방군은 계속 남진하면서 [[장강|양쯔강]]에 이르게 되었다. 양쯔강은 천연의 장벽이었기 때문에, 국민당은 이를 경계로 재기를 하려고 했다. 리쭝런이 공산당과 협상을 벌였지만, 공산당은 자신들이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협상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당시 국민당은 한반도를 예로 들면서 양쯔강을 경계로 한 남북 분할을 제안했다고 한다. 영화 [[건국대업]]에서 이러한 장면이 나오는데, [[저우언라이]]가 "[[중국]]은 [[한국]]이 아니오. [[장강]]도 [[삼팔선]]이 아니고요."라고 대답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bGVyugI0YCI)]}}}|| || '''Nanking Waits For The End'''[br]'''최후를 기다리는 [[난징]]'''[br]1949년, 함락 직전의 난징. 중화민국 정부의 주요 각료들은 이미 피난했고, 총통부에는 리쭝런과 그의 참모만이 남았다. 중화민국 해군 함대가 인민해방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양쯔강을 순찰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바꿀 순 없었다. || 공산당은 내전을 일으킨 전범으로서 [[장제스]] 외 48명을 체포할 것, 헌법을 폐기할 것 등의 8가지 조건을 내걸었지만 말이 좋아서 조건이지 사실상의 무조건 항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조건에 반발한 국민당 정부는 협상을 거부하고 국민당 협상단은 결국 아예 공산당 측으로 전향한다. [[중국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의 도하 작전이 시작되자 [[국민혁명군]] 일부가 배신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으로 넘어가 역으로 아군에게 총을 돌리는 상황이 일어났고, 결국, 양쯔강 방어선이 뚫리자 4월 23일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이 함락되고 [[난징 총통부|난징의 총통부]]에는 [[오성홍기|홍기]]가 내걸렸다. (양쯔강 도하 작전)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swelnus.com/14054ZbM30-3U23.jpg|width=100%]]}}}|| || 《[[난징 총통부|총통부]] 점령(占领总统府)》[* 천이페이(陈逸飞), 웨이징산(魏景山)의 유화. 1977년작. 왼쪽 하단 찢겨나간 [[청천백일만지홍기]]에 주목.]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2Y_4dMD874)]}}}|| || '''Shanghai: Exodus Continues As Reds Are Executed'''[br]'''[[공산주의자]]들이 처형되고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상하이]]'''[br]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이 진격해오자 패닉에 빠진 [[상하이]]의 모습. 외국인들은 본국에서 급파한 함선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으며, 수많은 중국인 시민들 또한 배편을 구해 달아나고 있다. 남은 시민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한편 국민혁명군 병사들은 공산당 스파이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