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신토 (문단 편집) == 설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800px-Yasukuni_Jinja.jpg|width=100%]]}}} || || 전범 합사 논란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br]과거에는 국가신토적 행정 아래 면세와 보조금 등 혜택을 받았다. || 토착 애니미즘 신앙이던 [[신토]]를 [[메이지 유신]] 이후 중앙정부에 충성하도록 만들어낸, 그 특유의 종교성의 껍질을 벗긴 사상. 여기서 \''''종교성의 껍질을 벗긴''''이라는 표현이 중요한데, [[메이지]] 정부와 메이지 정부를 옹호했던 상당수의 일본 지식인들은 국가신토를 신앙이 아니라 그저 [[야마토]]의 문화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그렇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대학]]의 종교학자 야나가와 케이이치(柳川啓一) 등은 국가 신토가 교리(dogma)적 형태를 표방하고 있다[* <戦後の宗教と世界>, circa 1976]고 논증하였으며, 실제로도 [[천황]]의 불가침성과 신성성을 강조하는 일제 말기의 사회상, 전쟁 수행에 있어서 군종 프로파간다 역할을 수행한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하나의 정신적 지배체계로 작용했음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 정부에서는 국가신토를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대일본제국 헌법]]은 서양의 헌법을 모방하여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표방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신토를 종교라고 주장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헌법을 어기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헌법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개개인이 따르는 종교와 상관없이 (당시 식민지 조선인, 대만인 등을 포함하여) 모든 일본인들에게 국가신토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신토를 종교를 넘은 것, 즉 초종교(超宗敎)라고 주장하며, 국가신토와 불교가 아닌 다른 이유로 국가신토를 거부함을 죄악시하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비국민]]이라 하여 탄압하기 일쑤였다. 원래 [[만세일계]] 개념은 '한 가문에서 나온다.'는 혈통 문제만이 아니었다. 역대 [[천황]]들은 대대로 즉위식을 거행하고 몇 년 뒤에 [[아마테라스]] 앞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같이 먹는 의식을 거행해 왔다. 이때 '역대 천황들에게 깃들여 왔고', '아마테라스에게서 유래한' 신적인 혼이 깃든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천황들은 여럿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라는 것으로, 이러한 사고는 고대 사제왕 신화에서는 형태를 바꾸어 여러 문화에서 나타난다. 심지어 [[야마토]]에 복속된 이즈모에서도 발견될 정도.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만세일계의 이러한 고대적 개념을 무시하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부응하게 바꾸어 왔다. 하나의 혈통에서 내려오는 신성한 절대군주의 표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의 일서에 기록된, 이른바 '[[천양무궁의 신칙]]'을 공교육으로 가르쳤다. [[천양무궁의 신칙]]은 일본서기 편집 당시만 하더라도 뒤늦게 나타난 소수 전승이었다. 일본서기 본문이나 다른 일서를 보아도 그런 말이 없다. 일본서기 내용 중 일본의 근대 민족주의의 입맛에 맞는 전승만 골라 조합한 것이다. 일본이 제국주의의 길로 나선 이후부터는 식민지 각지에 신사를 세우고 식민지인들에게 국가신토 사상을 강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