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제궁 (문단 편집) === 건설된 시기 === 구제궁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아직 모른다. 허나 전설이나 영명사의 기록을 따져 보면 고구려 때부터 구제궁 부지가 활발하게 이용됐음은 확실하다. 1117년 4월, 고려사엔 예종이 내린 제령(制)이 남아있는데 여기서 서경구제궁(西京九梯宮)을 언급했다. 제령은 [[용덕궁]] 건설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에게 보상을 서경구제궁, 상경장원정 창성(創成) 때 지급했던 보상에 맞춰서 주라는 내용이다. 이를 본다면 구제궁이 고려왕조 때 건설됐거나 보상기록이 남을 정도로 크게 증축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상경]](上京 개경의 별칭) 장원정(長源亭)은 문종이 개경 개성부에 지은 정자인데 장원정과 구제궁이 묶여서 언급된 걸 보면 문종이 구제궁을 건설 혹 증축했을 수 있다. 문제는 문종 세가나 문종 대 신하들의 열전엔 구제궁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는 것. 고려사엔 1081년에 문종이 서경 동쪽, 서쪽에 각각 [[좌우궁궐]]을 지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 두 궁 중 하나가 구제궁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데, 한참 뒤인 [[오연총]] 열전에 이 두 궁궐이 언급되는데 구제궁이라 하지 않고 여전히 서경좌우궁(西京左右宮)이라고 한 것이다. 즉 좌우궁에 대한 기록이 너무 부족해 구제궁이 좌궁, 우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이를 보면 예종의 제령에 같이 언급됐을 뿐이지 문종이 지은게 아닐 수도 있다. 고려사에서 최초로 구제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때는 문종이 죽고 4년 뒤인 1087년 선종 때이다. 그럼 선종 때 지었을 수도 있지만 고려사엔 선종이 구제궁을 갔다고 했지 선종이 구제궁을 건설했단 기사는 단 한 줄도 없다. 결국 알 수 있는건 고구려 영명사 부지 혹 그 근처에 고려가 언젠가 새 궁궐을 지었거나 옛 궁궐을 증축했고, 그 보상기록이 최소 예종 대까진 전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남아있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