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숙정 (문단 편집) == 상세 == 1968년 5월 16일 [[홍콩]] 출생으로, 1987년 20세 되던 해에 미스 홍콩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예계에 입문했다. 미스 홍콩 참가 당시 우승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턱 성형 루머 때문에 논란이 생겨 중도하차하게 된다. 이 논란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지며 직후 TVB 방송국과 계약하게 되었고 TV를 보던 [[왕정]] 감독이 구숙정의 미모에 꽂혀 이후 왕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참고로 주성치의 대표적인 페르소나 장민도 왕정이 발굴한 사람이다.] 165㎝의 키에 귀여운 외모와 장난끼 가득한 발랄한 미소를 가진 배우인 구숙정은 TV드라마로 데뷔했고, 이후 CF 활동을 했다. 초반에는 이른바 3급편이라고 불리는 에로물에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왕정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중 섹시하지만 다 벗지는 않는 구숙정 특유의 캐릭터를 만들게 된다.[* 한때 사람들이 기존 영화 장면에 노출 컷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본 적도 있으나 그런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 기존 영화들의 HD 리마스터링으로 풀린 노출 신을 자세히 보면 중요부위는 전부 철저하게 공사(패치) 작업을 한 후 촬영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라고양 촬영 당시 구숙정이 노출 씬에 거부감을 보이자 노출 범위를 최소화하고 촬영장에 여자 스탭을 동원하기도 하는 등 왕정 감독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고 한다. [[https://s.yimg.com/ny/api/res/1.2/c67lvJWpmO5w5R8lHyfOKQ--/YXBwaWQ9aGlnaGxhbmRlcjt3PTk2MDtoPTYyMjtjZj13ZWJw/https://media.zenfs.com/ko/chinatimes.com.tw/63e875c29838d22dee0b062653dd732c|포스터]] 자체도 상당히 선정적인데 정작 본편에서는 노출이 별로 없다. 그래서 1990년대 남성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 영화는 왕정이 제작만 하고 감독은 [[곽요량]]이 맡았다는 게 함정-- 특기는 태극권으로 실제로 무술을 할 줄 아는 배우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이 태극권 실력을 이용하여 사극물에서 액션 연기 등을 많이 하였고[* 대표작인 의천도룡기나 소림오조를 보면 상대역인 이연걸과 함께 상당히 볼만한 액션을 뽑아낸다. 소림오조에서 이연걸과 옷을 가지고 합맞추는 장면은 매우 볼만하다.], 이후로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다양한 배역들을 맡았다. 왕정 감독의 총애를 받은 배우로도 유명하며[* 왕정 강독의 총애를 받은 또 다른 유명 여배우로는 [[서기(배우)|서기]](舒淇)가 있다. 왕정은 생활고로 대만에서 홍콩으로 건너와 펜트하우스 등의 성인잡지에 올릴 나체 사진을 찍던 무명 시절 서기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6편의 영화 출연을 계약한다. 하지만 첫번째 영화 [[옥보단]] 2 옥녀심경을 촬영하던 중 서기는 노출 없이도 성공할 배우라고 판단, 이후의 작품에서 서기의 노출을 점차 줄이게 되고 이후 서기는 일체의 노출 연기를 사양하면서 연기파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왕정 감독과는 한때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등장한 56편의 영화 중 22편이 왕정 감독의 작품이다. 연기 스타일도 악동같이 짓궂으면서 어설픔이 묻어나는 귀여운 캐릭터와 특히 잘 맞는다. [[녹정기]]의 [[건녕공주]], 소림오조의 홍두 역이 대표적.[* 여담으로 역시 악동같으면서 귀여운 외모와 연기로 유명세를 구가한 [[주인(배우)|주인]]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 액션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1990년대 [[이연걸]]과 함께 한 3편의 영화에서[* 의천도룡기 영화판, 소림오조, 이연걸의 탈출. 세작품 모두 왕정이 감독이다.] 썸타는 사이로 등장하여 인지도가 높아졌다. 뛰어난 무술연기로 유명한 이연걸의 상대역에 맞게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것도 볼거리. 하지만 홍콩 현지에서는 왕정 감독의 총애를 받지만 연기력은 항상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실제로 정극 연기에서는 많은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똑같은 3급판 에로물로 시작하여 더 심한 편견을 받았으나 스스로 연기력을 갈고 닦아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금마장]], [[금상장]]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장족의 발전을 이뤘으나 홍콩 반환과 함께 배우생활을 접은 엽옥경과는 대조적이다. 1996년 이후로는 왕정 감독의 품을 벗어나 다른 감독들과도 작업을 해봤지만 연기력과 표현력이 이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다만 <자희비밀생활>에서는 [[서태후]]의 성격 변화를 나름대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던 작품이 관금붕 감독의 <쾌락과 타락>이다. 1999년 10월 2년 간의 열애 끝에 홍콩의 패션 재벌 심가위와 결혼했다. 본인 역시 연기에 한계를 느껴 배우로 길게 가고 싶은 미련을 버린지라 결혼과 함께 사실상 영화계를 은퇴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영화판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3명의 딸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