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상(시인) (문단 편집) == 생애 == [[1919년]]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642번지에서 아버지 구종진(具鍾震)과 어머니 [[아산 이씨]] 이정자(李貞子)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은 [[함경남도]] [[원산시|원산부]]에서 보냈다. 50세 아버지와 44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만득’이란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여러 [[남매]]를 다 잃고 일곱 살 위 형 [[https://www.newtonosb.org/%EC%8B%9C%EB%B3%B5%EC%8B%9C%EC%84%B1-%EB%8C%80%EC%83%81%EC%9E%90-%EC%95%BD%EC%A0%84-2-%EA%B5%AC%EB%8C%80%EC%A4%80-%EA%B0%80%EB%B8%8C%EB%A6%AC%EC%97%98-%EC%8B%A0%EB%B6%80|구대준]](具大浚) 하나 뿐 이었던 집안의 막둥이 아들은 불면 꺼질세라 [[금지옥엽]]으로 길러졌다. 시인의 어머니는 한문 고전과 평민 소설, 시조를 두루 섭렵한 고전적인 인텔리로, 그가 네 살이 되자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머니로부터 [[동몽선습]], [[명심보감]], 고시조, [[옥루몽]], [[삼국지연의]] 등을 배운 시인은 그 영향으로 보통학교 시절 조선어와 작문과 화법시간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종교적 분위기에 젖어 살아온 시인은 열다섯 살에 소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지만, 3년 만에 중도 포기한다. 그와 달리 형 구대준은 끝까지 신학교를 다녀서 신부 서품을 받았다. 이후 도쿄로 밀항해 [[니혼대학]] 종교과에 입학했는데, 이 때 [[학점]]을 받기 위해 습득한 [[불교]] 지식이 평생 시인을 받쳐줄 마음 속 깊은 자양분이 되었다.[* 윤정구,『한국현대시인을 찾아서』,「존재의 비의를 캐는 묵상의 시」,국학자료원, 2000, pp.26-30.] 이처럼 구상 시인의 시세계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배운 고전문학과 집안의 [[가톨릭]]적 분위기, 대학 시절 배운 불교 지식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에서 펴낸 시집 『응향』에 게재한「길」, 「여명도」등이 공산당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자 월남하였다. 6·25 전쟁 때는 종군작가단 부단장을 지냈다.[* 최동호, 『한국 현대 시사의 감각』,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p.63.] [[2004년]] [[5월 11일]]에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6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