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룡채성 (문단 편집) == 특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cm_news_1.1.nws_backart1_1_0.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dark-city-ok-detalle-original.png.jpg|width=100%]]}}} || ||<#ddd,#191919><-2> '''구룡채성의 구조를 표현한 그림'''[* 하단을 살펴보면 그냥 작은 마을 정도였던 성채가 어떻게 요새화되었는지 볼 수 있다.] || 구룡채성의 가장 큰 특징은 마구잡이로 지어진 건물의 숲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계획]]은 커녕 제대로 된 설계조차 없이 외부로 뻗어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대로 자꾸자꾸 [[빌딩]]을 높이 세우게 되었다. 중심부에는 [[유치원]]과 [[양로원]]이 있었다. 중간에 고층빌딩이 푹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단층건물이 유치원과 양로원이다. 교육시설이 [[구세군]] 교회 부설 유치원밖에 없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면서 성채 밖으로 나와 늦은 나이에 교육을 받았다. 현재도 그때 성채에서 살다 나와 교육을 못 받아서 [[문맹]]인 노인들이 있다.] 유치원은 단 2명의 [[교사]]가 있었다. 구룡채성의 유치원은 특이점이 있었다. 이는 유치원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의 아이들은 유치원 방 한켠에 잠을 재우고 다른 한 그룹은 밥을 먹인 뒤 반대로 재운 그룹을 깨워 밥을 먹이고 미리 밥을 먹인 그룹은 다시 재우는 식의 교대작업(shift operation)을 하였다는 점이다.[* [[구세군]]이 세운 유치원은 작고 열악했다. 교사는 단 2명, [[창문]]도 없는 방에서 [[선풍기]] 하나가 전부인 환경이었다. 진짜 [[영국인]] [[선교사]]나 중국인 [[목사]]들이 사명감만으로 운영한 곳이 맞다.] 교사들은 구세군 교역자였으며 이들은 [[손 씻기]] 등 위생활동과 [[영어]]/[[광동어]]/[[표준중국어]]를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라틴 문자]]와 [[한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어쨌든 구세군의 구호 및 선교활동 등으로 구세군은 홍콩 내에서 현재도 [[존재감]]이 아주 커졌다. 모두가 꺼리는 무법천지 무정부구역에 들어가는 것 하나만으로 당시에는 목숨을 각오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밖으로 나와 홍콩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현재 40대~60대 이상 중년층이나 70대 이상 노인이 그때 구세군 유치원에 다닌 어린 아이들이었으며 어렵게 살아온 그들은 나중에 부모 세대가 되며 자녀들의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홍콩에서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인기있게 된 게 이때 힘들게 어린시절을 보낸 노인들의 교육열이 대대로 내려온 탓이 크다. 바로 옆에 악명 높던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이 있어 주변의 건물은 6층 이상 짓지 못하게 하는 규제가 있었지만 구룡채성은 [[영국령 홍콩]]이나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두 개의 중국도 법권이 미치지 않는 월경지대였기에 이러한 법률을 무시하고 최고 15층까지 올라가게 된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다. 아니 5층 이하 공옥(公屋)들은 [[구룡반도]] 한복판 집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공간이 없어 얄짤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거기에 증축 및 개축을 반복하다 보니 [[미로]]와도 같은 [[골목]]이 생겨났고[* 그래도 골목마다 [[이정표]]가 있었으며, [[식당]]이 몰려있는 골목, 매춘골목, 공장골목 등으로 나뉘어있었다고 한다.] [[닭장]]처럼 빽빽한 아파트가 들어차서 대낮에도 햇빛을 못 보고 전등을 켜서 살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항상 어둡고 습기로 축축한 환경,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없어서 수도관이나 전기 배선 등이 천장에 늘어지게 되면서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무분별한 증축 및 개축의 결과 불과 0.03㎢의 [[잠실 야구장]]의 관중석 등을 합친 총 면적과 비슷한 면적에 무려 5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인구밀도로 환산하면 약 '''1,900,000명/㎢'''로 '''세계 최대의 인구밀도'''를 가진 곳이었다. 이는 [[서울시]] 안에 '''11억 5,000만 명'''이 살고 있는 수준. 철거된 후 최대의 인구밀도 타이틀은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Dharavi) 슬럼가가 가져갔지만 이쪽은 고작(?) 590,000/㎢[* 사실 이쪽도 [[서울시]] 안에 '''3억 5,700만 명'''이 살고 있는 수준으로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다.] 밖에는 되지 않는다. 평범한 지역이라면 주거지역과 비주거지역이 나뉘는데 이곳은 아파트로만 차있기 때문에 이런 높은 인구밀도가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편의시설[* [[구청]], [[주민센터]], [[경찰서]], [[소방서]] 등]도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구룡채성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저런 높은 인구 밀도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아파트들의 옥상이 아이들의 놀이 공간과, 주민들의 일종의 커뮤니티와 같은 공간으로 기능했다고 한다. (밤에는 약을 하는 사람들이 찾았다고.) * [[http://www.rioleo.org/kowloon/|대략적인 내부 생활상]] * [[https://www.wsj.com/video/city-of-imagination-kowloon-walled-city/36585ADF-5AEA-438F-8C4A-4C90D25B545A.html|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 [[http://www.youtube.com/watch?v=x29vVQiV4_o|홍콩의 공영방송국 RTHK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갱장집(鏗鏘集)'에서 방영한 구룡채성 내부의 모습 및 생활상]] * [[http://www.amazon.com/City-Darkness-Life-Kowloon/dp/1873200137/ref=sr_1_1?ie=UTF8&qid=1292042475&sr=8-1|City of Darkness]][* 구룡채성 내부를 돌면서 320여 장의 사진을 찍고 32명을 [[인터뷰]]한 사진집이다. 홍콩 내 라이프스타일샵인 GOD의 일부 점포에서는 원서로 팔기도 한다.] * [[http://www.youtube.com/watch?v=fbsPEVbcsXc|구룡채성의 당시 실제 생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월스트리트]] 저널의 영상에서는 구룡채성에 살았던 사람, 성채를 연구하는 사람, 구룡채성에서 영화를 찍은 사람 등등이 등장하며 단순한 기괴한 [[건축물]] 단지가 아닌 몇 만명의 사람이 살았던 공간으로서 구룡채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구룡채성에 거주했고 이후 인터넷에 [[https://web.archive.org/web/20060410144414/http://www4.ocn.ne.jp/~keropero/kyuryu00.html|탐험기]]를 남긴 [[일본인]] 요시다 이치로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성채의 건물주인 할아버지가 나와서 '''"여기 나쁜 곳 아니야, 문제없어"'''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구세군 유치원도 나오고 경찰이 순찰을 돌기 시작하면서 치안이 급속도로 개선되었다는 것도 언급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