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토시/역사 (문단 편집) === 폭격을 피해간 도시 === 중요 문화재가 많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수산업의 거점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폭격을 덜 받았다. 하지만 패전 직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원폭 투하]]의 대상 지역으로 원폭의 위력을 [[일본 정부]]에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폭격의 피해가 덜한 지역, 그러면서도 가급적 전략적 가치가 큰 지역이 후보지로 검토되었으며, 교토는 [[기타큐슈|고쿠라]]와 [[니가타시|니가타]], [[히로시마시|히로시마]], [[요코하마]]와 함께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나가사키 원폭|8월 9일의 2차 원폭]]은 원래 [[나가사키]]가 아니라 고쿠라(지금의 기타큐슈)에 떨어질 예정이었으며 고쿠라에는 다행히도, 그리고 나가사키에는 불행히도 '''그날 북큐슈 지역의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목표가 변경되었다.] 교토가 원폭 목표에서 제외된 이유는 1945년 당시 [[미국]]의 전쟁부[* [[국방부(미국)|미국의 국방부]]는 2차 대전 이후에 육군부와 해군부를 총괄하는 성격으로 창설되었다. 이 시절에는 육군을 담당하는 전쟁부(그래서 육군부, 육군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외에 해군과 해병대를 관장하는 해군부가 따로 있었다. 오늘날에는 국방부의 하위 기관으로서만 남아 있다.] 장관이었던 헨리 스팀슨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정신적 수도를 파괴하면 전후 민심 수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으며 스팀슨은 개인적으로 1920년대 필리핀 총독 시절 수차례 교토를 방문했다.[* [[오펜하이머(영화)]]에서는 이것이 살짝 각색되어, 대통령인 [[FDR]]이 직접 교토를 폭격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나온다. 젊은 시절 방문했다는 언급도 함께 나온다.] 그러나 재래식 공습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소이탄 폭격은 수시로 허가했다. 재래식 공습으로 문화유산을 제외한 일반 시가지와 공장, 이화학연구소 등의 여러 제반 시설은 철저히 파괴했다. 하지만 타 대도시들에 비해 폭격 강도가 약했던 건 사실이고 이러한 이유로 전후 새롭게 태어난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교토는 전근대 시기의 풍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