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련 (문단 편집) == 대학 교련 == [[파일:moomoodae.jpg]] 이른바 '''문무대(文武臺)'''와 '''전방입소''' 훈련. 훈련을 받는 [[육군학생군사학교]][* 당시에는 [[성남시]]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재 이 자리는 [[위례신도시]]가 조성되었다. 2011년 현재의 [[괴산군]]으로 이전.]의 별칭이 문무대였던 탓에, 대학 교련이란 말보다 문무대 훈련이란 말로 더 유명하다. 대학에서도 3[[학점]]이었으며, 1970년대엔 군필자 포함, 이후엔 군입대 예정자에 한해 필수과목이었다. 즉 신체검사에서 [[제2국민역]]이나 면제 판정을 받았다든지, 여자라든지,[* 1970년대에는 전문대학의 여학생도 교련을 받았다.] 이미 군대 갔다 왔다든지 하는 경우[* 이런 케이스는 반수나 편입생 중에서 많이 보인다.]는 교련 이수 대상자가 아니었다. 대학 때 교련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교련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강제 입영되기도 했다. 특히 [[운동권]]에서는 교련을 독재정권의 학생통제수단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거부하다가 단체로 강제 입영된 경우도 많았다. 전두환 정권에선 이렇게 끌려들어간 대학생들 일부가 [[보안사]]의 [[녹화사업(비밀 공작)|녹화사업]] 대상이 되었다가, [[의문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검색엔진에 "전방입소 거부"를 치면 꽤 많이 나오는데, 시대에 따라 입장 변화가 약간 있다. 1970년대에는 '''학생인데 무신 군사훈련이냐!'''하는 입장이 많았고, 1980년대에는 [[반미]] 사상이 많이 퍼져서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거부!'''가 슬로건이 되었다. 1986년에는 서울대생 [[김세진(열사)|김세진]], [[이재호(열사)|이재호]]가 전방입소반대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시위 도중에 분신]]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유신 정권 시절에는 [[여자]]들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아 많은 학과의 절대 다수가 [[남자]]였는데,[* 특히 [[경영학과]]나 [[공과대학|공대]]는 여학생이 잘 해야 한 명 있는 수준이었다.] 이런 식으로 교련을 거부하다가 '''한 학과의 한 학번 전체가 강제입영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특정 학과 특정 학번 사람들이 아예 사라져 학사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문무대나 전방입소 훈련을 받는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학 [[총장]]이 해당 육군 부대를 방문하곤 했다. 특히 [[지거국]] 총장의 경우 [[사단(군사)|사단]]본부에 4성기가 게양되고, [[군악대]]는 [[장성에 대한 경례]]를 육군 [[대장(계급)|4성]][[장군]]에 맞게 연주했다. 그리고 진짜 4성장군처럼, 대학 총장은 [[참모총장]]마냥 [[사단장]]의 영접을 받으며 [[의장대]]를 사열했다고 한다.(...) 지방 거점 국립대 및 종합 국립대 총장의 의전은 무려 '''장관급''', 즉 군인에 대응하면 실제 대장 계급에 상당하기에 저런 대접을 한 것이다. 교련 수업은 주로 [[토요일]]에 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에는 [[데모]]에 참가하느라 1번만 출석해도 학점을 받은 사례가 있을 정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