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련 (문단 편집) === 수업 분위기 === [[노태우 정부]]의 군정 종식 노력으로 분위기가 풀리면서 교련이 실용 교육으로 바뀔 때에는 그래도 재미를 느끼던 학생들이 없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지만, 한창 빡세게 훈련 시키던 1970년대에는 교련 좋아하는 학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앞서 서술했다시피, 교련교사들의 자질 문제로 말미암아, 야외 실습 수업 시간에 그 정도가 극에 달했다. 공포분위기 속에서 [[똥군기|완전 군대식으로 정렬해]], 교사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곳이 태반이었고, [[http://www.kdemo.or.kr/photo/photo/00725511_0001.jpg|참조]] 조금만 줄이 틀어지거나 늦으면 무자비한 [[구타]]와 [[가혹행위|단체기합]]이 떨어지는 경우들도 많았다. [[제식훈련]], 포복, [[총검술]], [[사격술 예비훈련]] 등의 동작이 틀리면 [[욕설]]은 애교이며, [[고문관|반복해서 실수하는 학생들]]에겐 [[군기훈련|얼차려]]는 물론 무자비한 [[체벌]]과 [[구타]]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실외에서 하던 교련수업이 있던 시절의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상당수가 치를 떤다. '''하루에 교련과 체육 두 과목이 동시에 들어있는 날'''은 피곤해서 수업을 못 들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따금 수업시간을 조정해서 아예 두 시간 연속 교련 또는 체육으로 가기도 했다. 정말 오뉴월 땡볕에 육군 도수체조와 PT를 두 시간 동안 하는 것도 모자라 그 다음 주에 바로 실기 시험 보기도 했으니. 특히 무더운 여름날 5~6교시에 체육+교련 이렇게 수업을 받는다면 그것이 극에 달한다. 1980년대 들어서 원산폭격이나 엎드려뻗쳐 등 고통 주기를 목적으로 하는 심한 가혹행위와 구타는 많이 사라졌지만, 몸을 고달프게 하는 훈련은 그대로였다. 선착순, 무릎걷기, 쪼그려 뛰기 등은 일상이었다. 여기에 더 병맛인 건 대부분의 학교에서 '''[[고3]]이라도 교련만큼은 열외가 없었다.''' [[고3]]을 위해 교양과목 시간을 자율학습으로 대체시켜도 '''교련만큼은 시켰다.''' 여차하면 우리도 근처 부대에서 실총 받아 싸워야 한다는 취지로 교련시간을 우직하게 준수하게 했는데, 실제로 이루어지면 이거 그냥 [[소년병]]이다. 다만, 교육열이 슬슬 오르던 1980년대 중반부터는 어지간한 고등학교들은 고3이 되면 교련, 체육은 교실에서 자습하거나 놀라고 축구공과 농구공 주고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 미술은 당연히 자습. 해당 지역 예비군 부대에서 엄하게 관리하던 것이 1980년대부터는 많이 이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미개와 야만 그 자체. 성인도 아닌 미성년 남학생들에게 군대식 문화와 심한 폭력을 가하는 걸(물론 성인에게도 하면 안된다) 보다 못한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을 경우, 한 술 더 떠서 군대 가면 [[병영부조리|이보다 더 심하게 다루는데]] [[의지드립|이것도 못 참으면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가냐고 오히려 불러놓고 훈계까지 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먹히던 시절이다. 결국 이러한 [[의지드립|정신력 드립]]이 곪아서 터진 것이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이다.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하거나, 보충역 또는 면제를 받아 군대에 안 갈 학생들에게도 항상 휠체어를 타고 등교하거나 한 팔이 없다든지 할 정도가 아니면 예외 없이 이런 짓거리를 했었다(...). 몸이 아파도 교련복 다 갖춰 입고 운동장까지는 나와서 다른 애들 훈련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교련복, 각반(전투화 신으면 없어도 됨), 베레모(또는 교모/교복 세대), 칼라(목 아래를 옷기스열린 부분을 가리는 흰색 또는 학교별 지정색의 삼각형 천), 버클 달린 허리띠를 모두 착용해야 했으며 하나라도 빠지면 감점 또는 얼차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사실은 '''현역병이 받는 모든 훈련 중 실총사격 이외의 모든 훈련을 받는 고등학교'''까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커리큘럼에 실제 현역병이 받는 기초군사훈련 대부분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좀 심하게 굴리는 학교는 뙤약볕 밑에서 교련복 입은 학생들에게 낮은 포복을 시키기도 했고, 동네 뒷산(또는 지역 예비군 훈련장, 교내 간이 예비군 훈련장)에서 각개전투를 시키기도 했다. 실총 무게의 모의 M1이나 M16 고무총으로 집총 16개 동작은 기본이고 총검술도 한 번은 했다. 수류탄 투척도 했고 국군도수체조도 필수. 교련 교과서 자체가 육군의 야전교범(FM)을 모아 만든 것이다. 국정 교과서 시대에는 당연하고, 검인정 교과서를 쓸 때에도 교련만은 모든 학교가 같은 교과서를 썼다. 웃기는 건 교과서의 그림은 교련복이 아니라 [[가쿠란]]을 입고 각반과 요대(이름은 요대인데 실은 탄띠다. 교련복에는 육군용 허리띠 비슷한 검은 포제 띠에 금속 버클이 달린 허리띠를 찼는데, 학군단 간부들만은 육군용을 색깔만 바꾼 형상의 탄띠를 그 위에 찼다.)를 찬 왜정시대부터 육이오 전쟁까지의 학도병 같은 모습이었다는 거. 웃지 못할 사실은 이렇게 학교에서 무진장 구르다 보니 정작 군대 가서 훈련소 입소 후에는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그나마 적응은 편했다는 것. 진짜 거짓말 한 마디도 보탬 없이, 구 일본군이나 현재 북한 인민군들이 이런 식으로 귀중한 인적 자원을 낭비한다. 교과 과정상 학생들도 군인들처럼 일종의 [[검열]]을 받는다. 그것도 [[분열]] 검열을 하는 일이 있었다. 이사장이 장교 출신인 경우에는 이러한 행사를 매우 좋아하기까지 했다! 1970~80년대에는 사열대에 [[교장]]과 교련 교사가 서 있으면, 학생들이 학급마다 줄을 지어 행진하고 '''우로 봣!'''하는 구령에 맞춰 교장과 교련 교사는 이를 보며 경례를 하고 지나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더 심하면 군용 지프차를 동원하기도 했다. [[http://cfile23.uf.tistory.com/image/1944A2044C9324A76BD1C1|참조]][* 해당 지역 예비군 간부들도 배석한다.] 1980년대까지의 교련 검열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면, 군 입대해서 훈련소 퇴소 열병식 연습을 하는데 '교련 검열 연습 할 때보다 쉽다'라고 느꼈을 정도. 그 때문인지 교련 수업을 받지 않은 세대가 본격적으로 군에 입대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부터는 기본 제식을 안 배운 이 신병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가르치느라 각군 훈련소의 교관, 조교들의 근무 난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정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