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화문광장 (문단 편집) === 2009년 이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광화문1.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세종대왕 동상.jpg|width=100%]]}}} || || {{{#fff ''' 세종문화회관 앞 '''}}} || {{{#fff ''' 세종대왕 동상 '''}}} || [[세종대로]] 중앙분리대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부터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육조거리]]에 서서 [[경복궁 광화문|광화문]]과 [[경복궁]], [[북악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원 설계자의 의도에 역행하는 설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광화문 중앙분리대를 [[광화문광장]]으로 바꾸어 광화문-육조거리-시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축선을 강조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2008년 5월 27일 착공에 들어가 2009년 8월 1일에 개장하였다.[[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175292|#]] 중앙분리대를 광장으로 바꾸면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인 [[세종(조선)|세종대왕]]의 동상[* 홍익대 교수이자 조각가인 김영원의 작품 [[https://www.yna.co.kr/view/AKR20090925122900061|#]]]이 기존 이순신 동상(1968년 설치) 뒤에 세워졌다. 한편 광장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왕복 차로수(20차로)를 자랑했던 세종대로는 12차선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서양의 광장과는 다르게 조선시대 육조거리 시절부터 나라가 행정 중심지 사이에 의도적으로 세운 관제 광장이므로, 서양의 광장과는 그 기능과 역할이 정반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50년대부터 근 60년간 이 자리는 광장은커녕 20차선 대로였던 곳이기 때문에 생활권과 상권, 보행동선이 광장을 통해서 연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광장을 기준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가슴시린 현실이며, 무엇보다 광화문광장 그 자신이 중앙분리대 출신이라 세종대로 중앙에 섬처럼 떠있기 때문에 '''일부러 세종대로를 횡단보도로 건너서 가야하는''' 기이한 광장이 되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들르는 곳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 되어버려, 시위의 공간, 화가 나서 따지러 가는 곳으로 공간의 성격이 많이 달라져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