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화문광장 (문단 편집) ===== 역사성 무시 논란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bostonkorea.com/20100316013300_2634.jpg|width=100%]]}}} || || {{{#fff ''' 광화문과 그 앞에 있던 월대 '''}}} || * '''월대 복원 문제''' 역사성을 무시한 대표 사례로 월대와 해치상 위치가 바뀐 점이 주로 꼽힌다. 광화문 앞에는 광장 역할을 하는 월대가 있었다. 월대 역시 궁궐의 일부였다. 베이징의 천안문도 그렇고, 동아시아의 궁궐 정문 앞에는 궁궐의 격을 높이고 기타 행사를 치르기 위한 월대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고 광복 이후에 콘크리트 광화문이 세워지면서 월대는 사라졌고 복원은 더 요원해졌다. 경복궁 완전 복원을 위해 문화재청을 포함한 유관 기관 모두가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서울시에서도 기왕 서울 광장을 만든다면 월대 복원을 위해서 광화문에 이어서 만드는게 옳다고 보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서울 시청 광장도 시청사 앞에 바로 이어서 만들었으니 전례도 있었고 경복궁 앞으로 광장을 세우면 궁궐에 대한 접근성과 광장에 대한 접근성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었으나 사직로 문제도 있고 해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 해치 위치도 사실 원래보다 앞으로 나와야 한다. 과거 사진들을 보면 해치 위치가 지금보다 수십미터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 ''' 육조거리 원형 논란''' 육조거리가 관악산을 향하고 있다는 것과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의도적으로 [[육조거리#s-1]]의 축을 [[조선신궁]]을 향하도록 돌렸다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논란과는 다르게 사실이 아니다. 광복 이후 한국에서는 일제의 영향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원형을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원형이 원래 그랬던 것인데 일제가 왜곡시킨 것이라 오해한 경우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육조거리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다. 원래 육조거리는 일직선 형태가 아니라 살짝 동쪽으로 굽어진 형태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2/2010090202077.html|#]] 앞서 말한 대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육조거리 도면인 '경성부 지적원도'에도 이렇게 살짝 굽어진 형태의 육조거리 모습이 보인다.[[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30290&cid=49360&categoryId=49360|#]] '''일제가 방향을 틀어다 놓은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이지 육조거리가 아니다'''. 일제가 왜곡시킨 부분은 광화문을 이전시키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축선(육조거리 축선이 아니다)과 어긋나게 바꿔놓은 것[* 나중에 다시 돌아온 광화문은 이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춰져 세워졌고, 결국 다시 수정되었다.]과, 육조거리의 축선 끝자락이 되는 남산에 [[조선신궁]]을 만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