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비엔날레 (문단 편집) == 특징 == 주최측은 광주비엔날레 재단이다. 광주시에서 '예향 광주',[* 예전부터 광주를 예(禮)의 고장이라는 의미에서 예향이라고 많이 불렀다.] '문화수도 광주'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광주 비엔날레 개최로 인해 광주는 문화도시 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을 받았다. 국내 미술 관련 비엔날레 중에는 [[부산비엔날레]]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함께 가장 인지도 높은 비엔날레이다. 세계구급으로 따지면 이 둘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다.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하지만 정작 국내 미술애호가들도 겉으로 보기엔 부산비엔날레나 미디어시티서울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아서 이를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출범 시기도 1992년 생긴 [[타이페이 비엔날레]][* 타이페이시립미술관이 1984년부터 1991년까지 격년제로 열었던 '대만 현대미술 트렌드'전과 '대만 현대 중국 조각'전을 1992년 합친 '타이페이 현대미술 비엔날레'로부터 출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에 이어 두번째로 생겼으니 동아시아에서는 상당히 오래된 비엔날레다. 1990년대만 해도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정도가 유명 비엔날레의 전부였다. 일본도 비엔날레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2001년 시작됐다. 본래 1995년에 개최되면서 홀수 해 가을에 개최하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 개최 시기에 맞춰 월드컵 관광 수요를 맞추기 위해 3회 비엔날레를 2000년 봄에 개최, 2002년 4회 비엔날레를 개최하여 현재의 짝수 해에 개최가 고정되기 시작했다. 5회 비엔날레부터는 다시 가을에 개최되는 것으로 변경, 지금과 같은 개최형식이 결정되었다. 개최장소는 용봉동 소재 비엔날레 전시관을 포함한 중외공원 일대가 주요 장소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광주 지역 여러곳에 전시공간을 두기도 한다. 이렇게 광주 비엔날레가 일찍이 세계 미술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남준]]의 선견지명이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39030|#]] 세계 미술계 물에서 놀면서 일찍이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자리를 굳혔던 백남준은 베니스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 등 세계 유명 비엔날레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광주 비엔날레 운영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이나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개최도 백남준의 영향력 덕분에 성사된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 [[비디오아트]]나 [[미디어아트]] 개념이 없던 시절에 광주비엔날레에 '인포아트'라는 제목으로 자기 제자나 외국 동료작가를 데려와 선보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