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종(고려) (문단 편집) == 기타 == *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책을 애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책은 역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 [[당나라]]의 제2대 황제 [[태종(당)|태종]] 이세민이 장군들과 나눈 대화를 엮은 책으로서 '''동양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로 여겨지는 저서이다. [[태종(당)|태종 이세민]] 역시 권력 때문에 자기 손에 형제들의 피를 묻혀야 했지만([[현무문의 변]]) 특유의 카리스마로 국가 초기 기틀을 다잡았다는 [[명군]]이었다는 평가([[정관지치]], 貞觀之治)를 받는다. 역사적으로 광종이 자신과 비슷한 황제의 언행을 탐독했다는 게 실로 흥미로운 부분이다. * 《[[고려사]]》 <악지> -속악- 부분엔 광종 대의 일화가 하나 남아 있다. 속악은 우리 가락, 우리 말로 지어진 토착 노래를 의미한다. 고려에서 한자로 만든 노래도 속악에 포함된다. <풍입송>이 대표적이다. * 언젠가 한국에서 비파 하나가 중국 강남 지역까지 흘러갔다고 한다. 그 비파 뒷면엔 한자로 노래가 적혀 있었는데 중국인들 중 아무도 가사 해석을 못했다고 한다. 어느날 광종의 외교관 '장진공'이 사신으로 중국 강남에 갔는데 중국인들이 마침 이 비파를 꺼내 해석을 부탁했다고 한다. 장진공은 바로 해석을 끝내 한시로 내용을 설명하니 이 노래가 바로 <한송정>(寒松亭)이다. 누군가가 비파 뒤에 <한송정>을 기록했는데 한자를 우리 식으로 쓴 이두로 내용을 써서 중국인들이 해석을 못한 것이다. 한송정은 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정자이다. 경포대 근처에 있던 걸로 보인다. * 평농서사 권신(權信)이 대상(大相) 준홍(俊弘)과 좌승(佐丞) 왕동(王同) 등이 반역을 꾀한다고 참소하자 왕이 이들을 내쫓았다. * 외모는 [[고려사]]에 기록된 [[최승로]]의 말에 따르면 용모가 뛰어나고 우수한 자질이 있었다고 한다.[[https://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bookId=世家&types=r#detail/kr_093r_0010_0020_0030|출처]] * 개경을 "황도"로 칭하고, 서경을 "서도"로 칭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