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종(고려) (문단 편집) == 가족관계 == * 제1비: [[대목왕후]] 황보씨 - [[태조(고려)|태조]]와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 * [[경종(고려)|경종]] * 효화태자(孝和太子) 기록이 없어 정확한 출생년도를 알 수 없으나 형인 경종이 태어난 955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이며, 고려사에 '사적에 그 이름이 실전되었고 후손도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종이 왕태자로 책봉되던 965년은 광종의 공포정치로 인해 많은 호족들과 왕족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특히 일부 호족들 중에는 왕족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들도 나타났다. 이에 경종 역시 광종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지내야 했지만, 효화태자가 요절해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살려두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역사에서 권력다툼으로 인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일은 꽤 많았다. 고려시대만 봐도 [[충선왕]]이 세자를 죽이고 [[충숙왕]]에게 양위한 이력이 있다. * 천추전부인(千秋殿夫人) 아지(阿志) 숙부 [[문원대왕]]과 [[문혜왕후]] 류씨의 아들 천추전군(千秋殿君)과 사촌혼을 했으며, 천추전군은 요절했다. 이후 천추전은 [[천추태후]]에게 상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 보화궁부인(寶華宮夫人) 남편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남매인 경종과 함께 겹사돈을 맺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이후 보화궁은 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에게 상속된다. 덧붙여 보화궁은 [[안종(고려)|안종]]의 사택이기도 하다. * [[문덕왕후]] 유씨[* 할머니 [[신정왕태후|신정왕후]]의 성씨를 따랐다.] * 후궁: [[경화궁부인]] 임씨 - [[혜종(고려)|혜종]]과 [[의화왕후]] 임씨의 딸 어머니 [[의화왕후]]의 성을 따랐다. 뒷배가 약했던 혜종이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시집보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광종은 즉위한 뒤 혜종의 아들 흥화군을 처형시켰고, 경화궁부인은 왕녀였음에도 왕후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외가 배경을 가진 천안낭군[* 태조 왕건의 후궁 천안부원부인 임씨의 아들인 효성태자]과 진주낭군[* 태조 왕건의 후궁 숙목부인 임씨의 아들인 원녕태자]이 광종의 호족 숙청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을 보면 정치적으로 꽤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후궁: 궁인 김씨 → 현비 김씨(賢妃 金氏) 원래 궁인으로, 1029년 11월 [[현종(고려)|현종]]이 현비로 추증한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