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장 (문단 편집) === 중세 === [[중세]]에는 [[성당]] 앞에 넓은 광장이 생기곤 했다. 성당을 지을 때는 각종 공사 부자재를 두는 공터로 활용하다가, 성당이 다 지어지고 나면 성당에 방문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중세에는 성당이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했는데, 성당 앞에 있는 광장은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중이 모이는 장소가 되곤 했다. 정부가 반포하는 각종 칙령의 포고, 중요한 범죄자의 벌[* 교수형이나 참수형처럼 죄인을 죽여서 전시해놓는 것 말고도, 절도범 등을 살아있는 채로 형틀에 묶어서 일정 기간 광장에 전시해놓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을 던지기도 했다.]이나 처형 같은 공권력 행사도 모두 광장에서 이루어졌는데 공권력 행사를 보다 많은 대중에게 빠르게 널리 알리기 좋은 입지였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돌던 시절에는 광장에 약초를 잔뜩 쌓아놓고 거대한 모닥불을 지피며 시민들이 [[강강술래]]처럼 모닥불 주위를 돌며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오염된 공기를 불로 정화해야 흑사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효과는 없었지만. 현대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역]]이나 [[관청]] 등의 시설 앞에 설치되는 광장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모이는 곳에 관청 등이 들어섰고 역이 들어섰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들 도시의 중심지 역할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도시에서는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예컨대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서 [[UEFA]] 우승컵을 들어올린 곳도 프랑크푸르트 시청 발코니였고 시청 앞 광장에 사람들이 운집하여 우승을 축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