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양시 (문단 편집) == 역사 == 지역의 이름은 옛날부터 계속해서 바뀌긴 했으나, 현재와 같은 경계는 대략 삼국시대부터 비슷하게 획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광양 지역은 예로부터 마로(馬老)[* 광양읍 용강리에 마로산이 있으며 산마루에 마로산성이 있다.], 모루(牟婁), 물혜(勿慧) 등으로 불렸는데 이들 모두 토종 지명을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한 것들이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 꼭대기를 의미하는 마루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말(동물)|말(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http://www.g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5183|광양에 말(馬)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동안 광양은 [[원삼국시대]]때 [[마한]]의 영역에 있을 것이라고 간주해왔으나 광양과 그 주변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 [[가야]] 계통의 유물들과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변한]]의 영역 혹은 [[마한]]과 [[변한]]의 완충 지대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후 [[백제]]의 영역에 속하게 되어 삽평군(歃平郡)[* 오늘날의 [[순천시]]] 관하(管下) 마로현(馬老縣)이라고 불렸었다. 그러다가 5세기에 백제가 약화된 틈을 타 가야 [[반파국]](대가야)이 [[전라도]] 동부 [[섬진강]] 유역에 진출하게 되면서 광양은 모루(牟婁), 물혜(勿慧)로 불렸었다. 그러나 [[백제]]가 다시 세력을 회복하게 되면서 광양은 또 다시 [[백제]]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신라]]의 [[삼한일통|삼국통일]]로 인해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남북국시대]]였던 [[경덕왕]] 16년(757년)에 [[순천시|승평군]](昇平郡)[* 오늘날의 [[순천시]]] [[관할]] 희양현(晞陽縣)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후백제]]가 세워지면서 [[후백제]]의 영역이 되었다가 [[고려]]가 건국되면서 광양현(光陽縣)으로 개명되어 이때부터 광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도 승주(昇州)[* 오늘날의 [[순천시]]]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그러다가 12세기 무렵에 처음으로 중앙 정부에서 광양에 [[감무#s-2|감무(監務)]]를 파견하면서 [[순천시|순천]]에서 분리되었다. [[성종(고려)|성종]] 14년(995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게 되면서 광양은 해양도(海陽道)[* 오늘날의 [[전라남도]] 일대]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현종(고려)|현종]] 재위 시절에 전국을 [[5도 양계]]로 나누게 되면서 광양은 [[전라도]]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광양읍성이 함락되고 광양 지역이 폐허가 되면서 복구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순천도호부에 편입되기도 했다. [[고종(대한제국)|고종]] 32년(1895년)에 [[23부제]]를 시행하게 되면서 남원부에 속하게 되었으나 1년 3개월 만에 [[23부제]]가 폐지되었고 전국이 13개의 [[도(행정구역)|도(道)]]로 나뉘게 되면서 광양은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돌산군]] 태인면을 편입하였다. 1915년에 [[다압면]] 섬진리 두치진(豆恥津)[* 오늘날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만지마을 일대]을 [[하동군]]에 넘겨주었다. 1949년에 광양면이 [[광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66년 골약면에 태인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태인출장소가 태금면(太今面)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에 [[동광양]] 지역을 관할하는 광양지구출장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1989년에 [[동광양시]]로 분리되었다.[* 전라남도에서 시 승격이 가장 늦게 되었다. [[목포시]]가 92년, [[여수시]], [[순천시]]가 40년, [[나주시]]가 8년, [[여천시]]와 [[송정시]]가 승격된지 3년 만이다. 그리고 만약 이 지역이 시 승격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골약면은 인구 6만짜리 읍으로 승격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1995년에 [[동광양시]]와 기존의 [[광양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시]] 형태의 광양시가 설립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후 1998년 광양시 동간 행정동 통폐합으로 인해 5개의 [[행정동]]밖에 남지 않아 비슷한 인구대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행정동의 수가 적은 편이다. 이는 광양시의 인구 증가로 인해 다시 문제가 되는데, 광양시의 중심인 중마동의 경우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로 [[행정자치부]] 지침상 분동 기준인 5만명을 넘었으나 분동을 하지 않고 있어 전라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행정동]]이다.[* 광양군의 중심지인 광양읍도 전라북도를 포함한 호남 전 지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이다.] 8회 지방선거에서는 중마동이 중동은 3,다선거구, 마동은 4,라선거구(골약동,태인동,금호동에 편입)로 획정되었다. 2000년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소개된 지역이고 영화 [[명량]]의 촬영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