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고 (문단 편집) === TV 광고 === 특이하게도 한국에서 지상파 방송을 이용한 광고매체는 TV가 라디오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1956년 개국한 대한민국 최초의 TV방송국인 [[HLKZ-TV]]에서 최초의 TV광고로 [[영창뮤직|영창산업]](현 HDC영창)의 유니버설 레코드 광고가 방영되었다. 이 광고는 두 남녀가 춤을 추는 삽화가 나오면서 유니버설 레코드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는 멘트를 넣었다. 그 외에도 [[OB맥주]]와 [[한국전력공사|경성전기]], [[천도제약]]이 주요 광고주였으며 텔레비전 녹화기술이 없었던지라 생CM이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엔 TV가 부유층들이나 가질 수 있었던 물건이었던 시절인데다가 TV광고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결국 1957년 HLKZ가 경영난으로 [[한국일보]]로 경영을 넘겨주면서 명칭도 DBC로 변경되었다. 당시에는 광고 규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http://blogfiles.naver.net/20160129_280/mcdonalds246_1454068065829tTEpe_JPEG/OB_%BC%EE.jpg|스튜디오에 협찬사 로고가 붙어있기도 했다.]] 이는 1950년대 미국 및 일본 [[민영방송]]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당시 일본과 미국은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8CFD07E5325278F9DB81A138C997517B84EE&outKey=V128cc7a7ba0401654375977d5a4b782b337477fc2a469530d30c977d5a4b782b3374&width=544&height=306|뉴스 프로그램을 광고주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영상을 보면 스폰서의 제품이 뉴스 데스크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도 <[[도시바]] 일요극장>이나 <[[파나소닉]] 드라마 시어터(구 내쇼날 극장)>, <라이온의 고키겡요>, <[[SMAPxSMAP]](로토제약)>과 같은 사례가 있다.] 이는 1972년 초까지도 이어져서 [[OB맥주|OB그랜드쇼]]나 [[하이트맥주|크라운쇼]]같은 프로그램도 있었을 정도였다. 여하간 1970년대 중반에 광고규제를 강화하면서 없어진 풍경이 되었다. DBC하에서 [[한국일보]]의 도움으로 TV 광고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나, 1959년 불의의 화재로 방송이 중단되면서 TV 광고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1963년 [[KBS]]가 시청료 징수와 함께 광고방송 (상업광고방송)을 개시하면서 TV 광고가 부활했고 1964년 들어 TBC도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969년 KBS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중단하고 MBC가 개국하면서 KBS-TBC 대결구도에서 TBC-MBC 대결구도로 변모하였다. 1956년에는 문달부가 동양맥주의 'OB 시날코' 광고를 만든 게 시초이며, 뒤이어 [[락희화학공업사]]의 '럭키치약'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들어냈다. 1959년 신동헌 감독이 '[[진로(브랜드)|진로]] 파라다이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 뒤에도 [[현대자동차]]는 [[씽씽이]]를, [[롯데제과]]에서는 [[스크류바]] 광고를, [[롯데삼강]]에서는 [[빠삐코]] 광고를 애니메이션으로 활용하였다. 이 광고들은 [[한국 애니메이션]] 사에서도 눈여겨볼만한 족적. 이후 1970년대 들어 TV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TV 광고수요이 급속히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라디오나 영화, 잡지를 제치고 신문의 뒤를 잇는 광고매체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고규제와 검열이 도입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1973년 2월 16일에 방송법이 개정되어 스포츠 중계와 문화예술 실황중계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중간광고]]가 폐지되었고, 1974년에 스팟광고(토막광고)의 횟수가 시간당 3회로 제한되었으며 1976년에 프로그램 광고도 총 방송시간의 10%를 편성할수 있었던 것을 8%로 줄이게 만들었다. 이때 프로그램 중간마다 자막으로 광고를 하는 자막광고도 없어졌다. 외국인 출연도 외화낭비라는 이유로 1989년까지 금지되었었다. 그래도 몇몇 예외가 있긴 했는데, 전문 모델이 아닌 해외 전문가나 비전문 재한 외국인이 출연한 경우가 아주 약간 있었다.[* 옛날 한국 광고는 국내 모델이나 배우만 나오던 이유중 하나. 예를 들면 [[삼립식품]]의 빵 브랜드중 하나였던 꾸쉬꾸쉬의 1980년대 CM 중 하나는 세트장이나 분위기가 서양 귀족풍인데 한국인들이 서양 중세귀족 흉내내는 광고같은 어색한(?) 것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1989년 외국인 출연제한이 본격적으로 해금되었고, 이에 당시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밀키스]]와 [[주윤발]]. 또한 식품이나 술, 약품 광고에 경고문구가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다른 광고에서도 캠페인 문구가 나오는 것도 이때의 일이다, 특히 1976년 방송윤리위원회에 의해 사전심의제가 도입되면서 상당수 광고가 기껏 만들어놓고도 전파를 타지 못하거나 수정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편 광고대행업이 성장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는데, [[제일기획]]이 1973년에 설립되었고 1974년에 MBC 애드컴의 전신인 한국연합광고가 설립되었으며, 만보사가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에 합병되어 상호를 [[오리콤]]으로 변경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 들어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되는데 일단 TBC가 KBS로 통폐합되고 TV와 라디오광고 영업권을 독점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現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설립되었으며, MBC도 광고 영업부문을 그쪽으로 넘겼다.[* 여담으로 TBC가 KBS로 통폐합되면서 한동안 무광고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별안간 유일한 창구가 되어버린 MBC로 광고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리고 1981년 3월 7일 KBS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재개하면서 [[블록광고]]식으로 편성하기 시작하고 그 해 4월 들어 광고가 전면적으로 컬러화 되었다.[* 1980년 12월 컬러방송 전면 시행 이후 컬러방송-흑백광고의 공존 기간이 반년 가까이 있었다. 몇몇 광고는 급히 영화필름로 촬영되거나 컬러 슬라이드쇼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1년 6월 들어 KBS에서도 프로그램 광고를 취급하기 시작하고 1982년 1월 25일 2TV의 광고방식을 블록식에서 프로그램/스팟(토막)식으로 변경하였다.[* 이때부터 제공자막도 일본식으로 광고주 로고를 직접 띄우던 것을 완전히 없어지고(그 이전에는 세로 제공자막과 병행해서 쓰는 방식이었다.), 규격화된 자막 글꼴만 쓰게 되었다.][* 당시 일본식의 제공자막은 MBC가 마지막까지 사용했으며 이 시기에 KBS2는 제공자막을 광고주만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KBS1에서 블록방식으로 광고하고 KBS2와 MBC에서 프로그램/토막식으로 광고하는 구도가 전개되어갔고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올림픽의 영향으로 광고수요량이 크게 늘어나며 15초 단위나 20초 단위 광고가 보편화되었음에도[* 물론 토막광고나 블록광고는 그대로 30초를 유지했다. 애초에 당시 규정이 그렇기도 했고.] TV광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1988년에 제일보젤(현 하쿠호도제일) 등을 시초로 해외 광고기획사들이 합자회사 형식으로 진출한 뒤 1991년 [[SBS]]가 개국하면서 방송 3사체제가 구축되면서 경쟁도 치열해져갔고, 같은 해에 광고시장이 개방됐다. 1994년 KBS-1TV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폐지되었지만 이를 메꾸기 위해서 프로그램 광고의 방송량이 8%에서 10%로 다시 확대되고, 케이블TV 본방송이 시작되고 옥외 전광판이 증가하면서 광고량이 크게 늘어나 TV 광고 시장은 적체상태에서 벗어났다. 이후 [[IMF 외환위기]] 시절의 위축기를 거치고 2000년대 들어 지상파 TV 채널의 시청률이 점차적으로 떨어짐에 따라 광고점유율 또한 떨어졌고, 케이블 TV의 보편화와 위성TV, DMB의 개국으로 방송광고시장 경쟁은 치열해져갔다. 특히 이명박 정부들어 큰 변화가 진행되어 2009년에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상파TV-라디오 광고판매 독점권이 헌재에서 위헌판결이 나고 2010년에 [[간접광고]]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으며 2011년에 종합편성채널이 개국되면서 방송광고시장은 무한경쟁 시대에 들어가게되었다. 한국의 TV 광고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출상에 큰 차이는 없으며 퀄리티 또한 해외에 비해 매우 조악했다. '''에코음'''이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광고상표명을 외칠때면 꼭 '''악센트를 넣는''' 광고 전용 성우의 나레이션에 [[후시녹음]]은 기본이었으며, 출연자 본인 혹은 성우가 어지간한 광고 배우의 목소리를 더빙하였다. 일례로 당시 TV 광고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등장인물 중 일부(ex. 타이거 마스크) 및 남자 어린이 인물의 상당수 목소리는 80% 이상 [[박영남]]을 돌려썼다고 보면 된다.[* [[빅바]] CM만 봐도 알수 있다.] 또 촬영기법은 1980년대 초반까진 32mm 필름으로 주로 찍어왔으며, VTR 촬영은 1970년에 TBC에서 처음 [[http://www.geocities.jp/tiritiri555/history.1953-1973.html|시도되어]] 1981년 컬러TV 시대 초기에 제작편수가 늘기 시작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실상 3~5공 시절 아래에 방송되는 상업 TV 광고의 대부분은 국가정책이나 생활의식 개혁과 관련된 계도성 구호가 밑에 자막으로 씌여졌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식품계열 광고에서는 반드시 [[혼분식 장려 운동|혼분식을 장려]]하거나 불량식품 추방 문구가 나온다거나, 의약계열 광고에서 약물오남용 방지 문구 앞에 쓰여져있는 '아빠는 안보역군 엄마는 방첩주부'라든가, 심지어 생활용품 등지에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 기르자' 등 산아제한 구호까지 있었다. 당시 정부의 성격을 감안하면 당연했던건지도 모른다. 또한 이 시기의 CM에서는 유명한 배우, 체육인, 예능인이 등장한다 해도 발성이나 스케줄 문제 등으로 '''광고 전담 성우의 목소리가 더빙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1980년대에 한정하면, 남자 성우는 나레이션이건 더빙이건 거의 [[조명남]], [[한상덕]], [[유강진]], [[이광세]], [[정명옥(성우)|정명옥]] 이 5명을 돌려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명옥은 주로 MBC에서 많이 나왔으며, 이쪽은 한때 CM 성우를 별도로 뽑았던 적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부터 서서히 CM에 등장하는 유명인사 본인의 목소리가 나오는 광고도 몇몇 제작되면서 줄어들었지만.[* [[선동렬]]이 등장하는 약품 광고 '투수코친' CF, [[윤동균]]이 등장하는 음료 광고 '''파낙스D'''는 [[한상덕]]이 목소리를 입혔다. [[이종범]]이 등장하는 기쎈비타, [[김영덕]], [[유승안]], [[이강돈]], [[한희민]], [[이상군]]이 출연한 한양화학 골드륨도 성우들의 목소리다.(단, 김영덕은 제외)] 그러나 어린이 완구 광고에선 21세기 들어서도 간간이 쓰이는 기법이다. 실사를 제외한 광고연출기법은 주로 애니메이션, 그중 몇몇은 [[스톱 모션]]같은 아날로그적인 맛이 있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스캐니메이트 기술이 도입되었고 1980년대 중반 광고부터 한국 광고에서도 3D CG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중반부의 삼성전자 "휴먼테크" 광고 및 후반부의 [[금성사]] "테크노피아" 기업CI 광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는 어째서인지 예산을 적게 들인듯한 그림 몇장만 휙휙 넘기고 끝나는 슬라이드쇼 방식의 광고도 적지 않게 볼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몇몇 경품이벤트 안내하는 광고중 일부가 슬라이드쇼 케이스였다.[* 이는 제법 큰 규모의 기업광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하면 30초를 슬라이드 2장으로 때우는 일도 허다했다.] 1990년대 TV 광고 상당수의 특징 중 하나는 유난히 광고하는 제품의 이름을 한쪽 구석에 광고 내내 표시하는 것이다. 특히 제과 및 식품류일수록 두드러지는 특징. 다만 1996년 베른협약 가입 이전의 한국 문화사가 그렇듯 광고사도 표절로 점철된 감이 없지 않다. 표절광고의 대표적인 예라면 1988년에 [[조용필]]이 출연한 [[맥콜]]광고가 있는데, 이 광고는 LG애드(현 HS애드)가 특유의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해내 화제가 되었지만 A-HA의 [[Take On Me]] PV를 표절한걸로 들통났다. 이래 놓고 국내에서는 최고권위의 광고 시상식이었던 '한국방송광고대상(현 대한민국광고대상) 최고상을 받고 칸 광고제에 출품돼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이후에도 광고기획사들의 표절은 더욱 심해져서 1989년 삼성 히트세탁기 광고가 일본 마쓰시타 전기의 세탁기 브랜드 '내쇼날 아이사츠고(愛妻号)' 광고를,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광고 '글짓기' 편은 마쓰시타 오븐레인지 광고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하고 아빠는 설거지를 잘해요' 편을 각각 따라했다. 위와 같이 표절 광고가 범람하자 1992년 3월부터 방송위원회가 '방송광고심의규정' 87조에 광고 모방, 표절, 복제에 관련된 규정을 넣어 7월 1일부터 시행했고, 9월 8일 도쿄 특파원 데이비드 킬번[* 2000년대 들어 서울시의 '북촌가꾸기 사업'에 맞서 북촌 한옥지키기 운동을 벌여온 인물이다.]이 해당 잡지에 한국 광고계의 표절 및 복제 행태를 신랄히 비판하는 칼럼을 냈다. 11월 14일에 방송위가 해태 써니텐 광고에 대해 일본 코카콜라 광고를 모방했다 하여 방송 중지 명령을 내렸고, 같은 시기 MBC <이야기쑈 만남>에 표절광고 문제가 처음 소개됐다. 1993년 4월 30일 MBC <[[PD수첩]]> 107회 '표절, 이것이 문제다(백종문 취재)' 편에서 같은 문제점을 제기했다. 위와 같이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방송위는 1993년 5월 26일 선경 카스피, 동화약품 헬민200 등 표절광고 11개에 대해 방송중지를 때렸고, 6월 28일에는 한주통산 웨스트우드 등 12개에 대해 추가로 방송중지를 내렸다. 동년도 방송광고대상에 선정된 한국통신 국제전화 001 '아프리카 편'이 일본선박진흥회 광고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발표 전 수상작에서 제외시켰다. 이와 같은 제재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1994년에 동양맥주 OB 아이스의 '얼음 편' 등과 같은 표절 사례가 사라지지 않았고, 저작권법의 허점을 이용해 1987년 10월 1일 세계저작권협약 발효 이전에 나온 음악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찾아오면서 많은 광고주들이 사라지고 [[IT버블]] 등으로 정보, 통신 관련 광고주들이 생겨나며 광고의 형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00년 이후의 광고는 현재와 별 차이가 없지만 과도기인 만큼 실험적인 성격의 광고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 2005년까지는 [[외국어]]가 등장할 경우 [[한글]]을 병기하는게 의무였지만, 2006년부터 없어졌다. 2007년부터는 지상파, 케이블 상관 없이 해당 어린이,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대에 광고방송 표기[* EBS는 왼쪽 상단에 표기하지만 대부분 오른쪽 상단에 표기한다.]를 의무적으로 적용했다. 1개의 방송사에서만 나오는 광고도 있다.[* 예를 들어 태영건설 및 [[데시앙]] 광고의 경우 SBS에서만 나온다. [[SBS]]가 [[태영건설]] 계열이기 때문.] 또한 예전에 나왔던 광고가 그대로 다시 나오는 경우도 간혹 있다. 또한 평일에만 나오는 광고도 있고, 주말에만 나오는 광고[* 크몽]도 간혹 있다. 지상파 기준, TV에서 나오는 광고의 길이는 10[* 삼성 BESPOKE 무풍에어컨], 15, 20, 30, 45, 60, 75, 90, 120[* 삼성 BESPOKE 냉장고 광고], 150[* 테라 광고]초이다.[* 홈쇼핑 광고 제외] 종편에서는 4분 연속으로 나오는 광고도 온에어된적 있었다. 공익성 광고가 상업광고 자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보건복지부의 노담광고[* 2021년 7월까지는 상업광고 자리에 들어갔으나 그 이후에 나오는 광고부터는 공익광고 자리에만 들어간다.]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광고 등이 있다. TV광고가 나오는 기간은 광고마다 전부 다르지만 짧게 나오는 광고는 1개월도 못하고 내려가는 광고도 있다.[* 특히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위의 경우 2~3일 정도만 하고 내려갔다.] 매월 1일은 새로 나오는 광고와 내려가는 광고가 많은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