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개토대왕 (문단 편집) == 개요 == >恩澤洽于皇天, 武威振被四海. >'''태왕의 은택이 황천에 두루 미쳤고, 위무가 사해에 떨쳤다.''' >----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王, 諱談德, 故國壤王之子. 生而雄偉, 有倜儻之志. >'''광개토왕의 이름은 담덕(談德)이며,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조''' [[고구려]]의 제19대 [[태왕]]. '''[[담덕]]'''이라는 이름으로도 제법 알려져 있고, 한국에선 '''"한국사의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드로스]]"'''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기준으로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추모의 13세손이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17세손으로 기록되었는데, 아마 직계가 아닌 왕계를 기준으로 한 것 같다. 18세(만 17세)에 보위에 올라 39세(만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며 특히 전쟁에 대해서는 한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복자]]이자, [[세종(조선)|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를 대중들이 가장 자주 붙여 부르는 군주이기도 하다.[* 고구려 당대에는 태왕이라는 호칭이 더 빈번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고대 왕조인 고구려의 역사적 이정표를 뒤바꿔 놓은 위인이자 '''[[고구려]]의 전성기를 연 군주'''다. 즉위하자마자 남쪽의 주요 적국이었던 [[백제]]를 쳐서 항복시키는 동시에 서쪽의 [[후연]] 등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광대한 [[요동]] 지역을 차지했으며, 북쪽의 유목 민족들을 정벌하여 [[만주]]를 포함한 넓은 땅을 영토로 삼고 [[말갈]] 등 유목 민족들을 휘하에 두어 북쪽 영토를 크게 넓힘으로써 고구려의 국력을 크게 키웠다.[* [[고국원왕]] 당시 소모되었던 고구려의 국력을 [[소수림왕]]이 재건하여 광개토대왕이 국력 재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이점도 있다. 그러나 소수림왕 당시 고구려는 유목 민족에 대한 영향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고, 남쪽의 백제도 근초고왕이 죽었지만 여전히 강력했으며, 무엇보다도 서쪽으로는 모용선비와 한족이 합세한 강국인 후연이 버티고 있었다. 이 불안한 대외 정세를 광개토대왕이 타파하고 오히려 고구려를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