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화 (문단 편집) == 역사 == 관화는 [[북송]] 말기의 북방 [[중고한어]]에서 유래되었다. 관화의 기원지인 [[중국]] 북부는 예로부터 [[강족]] 등 주변 이민족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몽골계인 선비, 거란, 몽골족, 퉁구스계인 여진족 등 유목민족들이 대거 남하해 혼거하며 영향을 주어 개방적이었으므로 남방지역의 한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게 되었다.[* 언어는 화자 수가 아닌 화자 집단의 출신 성분이 다양하고 개방적일수록 더 빨리 변화한다. 반면 남중국은 북중국보다 화자 집단이 단조로워 북중국의 관화보다 언어적 변화가 상대적으로 느렸다.] [[정강의 변]] 이후 북송이 [[황하]] 유역을 상실하고 [[난징시|난징]]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남송]]이 되었고, 난징 지역을 중심으로 관화가 사용되었는데, 이를 강회관화(江淮官話)의 시작으로 본다. (강회관화에는 난징 방언이 속한다.) 강회관화는 [[명나라]] 시대부터 [[청나라]] 시대 초기까지 행정 표준어의 역할을 하였으나, 점점 북경관화([[북경어]])의 지위가 높아지다가 [[19세기]] 청나라 말에 여러 반란으로 인해 난징 지역이 몰락하면서 북경관화가 완전히 [[표준어]] 역할을 하게 되었다. 관화는 시대별로 중세 관화, 근세 관화, 현대 관화로 나뉜다. * 중세 관화 시기: [[12세기]]~[[14세기]] (초기 관화, [[북송]] 후기, [[금나라]], [[원나라]]) * 근세 관화 시기: [[14세기]]~[[19세기]] (강회관화와 북경관화 중심, [[원나라]] 후기, [[명나라]], [[청나라]] 초중기) * 현대 관화 시기: 19세기~ (북경관화([[북경어]]) 중심, [[청나라]] 후기,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북송 후기부터 원나라 시대까지는 북중국과 [[장강]] 하류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나, 명나라 시대 이후 관화 화자들이 각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그 외의 지역에서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구이저우성]] 등 서남부 지역은 [[명나라]]가 정벌한 후에 북방지역 사람들을 대거 이주시켜 관화 구역에 편입되었고, [[쓰촨성]]은 원래 [[중국어파]]에 속하는 파촉어를 사용하던 지역이었으나, [[명청교체기]]에 [[장헌충]]의 대학살로 인해 파촉어의 명맥이 끊기고, 청나라가 쓰촨에 관화 화자를 대거 이주시키면서 관화 구역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청나라]] 말기에는 만주(둥베이)의 한족봉금령이 풀려 관화 화자들이 만주로 몰려들어 관화 구역이 만주(둥베이 지방)까지 확장되었다. 사실 관화가 기원한 북중국은 [[선사 시대]]부터 [[중국 대륙]]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 수와 다양한 집단이 있던 지역이었고, 이 지역의 말은 원래부터 많은 화자 수를 보유했으나, 이주 정책과 보급 정책으로 인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이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정부에서 관화 화자를 서북쪽 [[위구르]]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키기도 했고, 북경관화([[북경어]]) 바탕인 [[표준중국어]]를 중국 대륙 전역에 보급했기에 관화 구역은 계속 커졌다. 한편, [[국부천대]]로 [[타이완섬|대만]]으로 피난한 [[중화민국]] 정부도 강력한 관화(국어) 보급 정책을 폈기에 대만에도 상당수의 모어 화자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