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곽광 (문단 편집) === 출생 === 곽광의 출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복형 [[곽거병]](霍去病)이 흉노전쟁에서 돌아오면서 당시 10살이었던 곽광을 장안으로 데려갔다는 내용이 [[한서]]에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출생년도는 기원전 130년이 아닐까 싶다. 곽거병이 흉노전쟁에 처음 참여한 것은 기원전 123년인데 이 때는 삼촌인 대장군 [[위청]] 휘하의 장수였고 첫 출전이었으니 이런 행동을 하긴 어려웠을테고 위청과 권위가 동등한 사령관으로 출정한 해가 기원전 121년이었으니 이 때 친부 곽중유를 만나고 곽광을 데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훗날 한나라 최초의 권문세족 당주가 되는 곽광의 출신은 한미했다. 아버지는 곽중유(霍仲孺)라는 사람으로 평범한 하급관리였다. 곽중유는 장안에 있는 전한 제7대 황제 무제의 누나인 평양공주의 저택을 공무 때문에 드나들었는데 이때 위소아(衛少兒)라는 평양공주의 하녀와 눈이 맞았다. 이후 위소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곽거병이다. 곽중유는 하동군 평양현으로 발령받자 위소아를 버리고 떠났다. 위소아는 이후 진장(陳掌)이란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곽중유는 다른 부인과 사이에서 자식을 두었는데 이 사람이 곽광이다. 위소아는 무제의 황후 위황후의 자매였기에 곽광의 이복형 곽거병이 젊은 나이에 출세했다. 이 덕에 곽광도 궁에 들어갈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