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학사학 (문단 편집) == 과학사학의 역사 == 과학사에 대한 관심은 통사적인 분야사를 서술하려는 전통과 자연지식의 습득의 역사를 탐구한 전통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통사적 분야사를 서술하려는 전통에서 과학사는 과학의 하위 분야로 이해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과학사는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과학이라는 분야의 통사를 그려냄으로써 과학의 역사 자체에 대한 흥미뿐만 아니라 과학의 개념과 이론, 방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과학분야가 발전되고 전문화되어 가면서 과학사적 지식 자체가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짐에 따라, 과학사는 한물간 과학자들이나 연구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자연지식의 습득의 역사를 탐구한 전통에서 과학사는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의 전체적인 발전과정을 위해 연구되어야할 것이었다. 이런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는 [[프랜시스 베이컨]]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인간의 인성의 본질과 그 적합한 사용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지식의 역사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는데, 베이컨의 주장은 이후 18세기에 활동한 콩도르세와 19세기에 활동한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한 과학사 연구는 휘그적 역사관이라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데, 이 휘그적 역사관은 과거로부터 현재 과학의 이론, 개념, 법칙, 방법 등의 기원을 찾고 변천만을 보며, 현재 과학과의 공통점만 찾게 되어, 과거 과학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며 당시의 이론, 개념, 법칙, 방법 등은 과거 과학에서의 중요성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무시하였다. 그래서 과학사는 인류의 지식이 현재 과학을 향해 나아가는 행진만을 서술하는 것에 그쳤다. 이러한 휘그적 역사관을 극복하여. 과거의 과학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과거의 사회 ·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과학사 연구의 관점이 바뀌게 된 것은 철학사학자들의 영향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19세기에 과거의 철학에서 현대의 철학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여러 철학사학자들이 과학사에서도 중요한 철학적 개념들의 역사를 다루게 되면서 그들의 관점이 과학사로 옮겨졌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알렉상드르 쿠아레]] 등의 학자들의 영향으로 중세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텄기 때문이며, 중세 과학과 근대 과학 사이의 [[연속성 논쟁|연속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과학사학이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성장하는 데에는 과학사학의 선구자들이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인류의 지식 중 과학을 하나의 단위로 파악하고, 과학의 발전을 살피는 데에 과학의 여러 개별 분야들을 따로따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대표적인 인물인 [[조지 사튼]]은 과학사학 전문 학술지인 이시스를 창간 및 편집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과학사학 강좌를 개설하는 등을 통해서 과학사학을 독자적 학문으로 성립시키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과학사학 초창기의 여러 학자들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많은 연구 성과들을 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여러 대학들이 초창기 과학사학자들을 받아들이면서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까지 많은 과학사학자들이 배출되었다. 마침 미국 대학의 양적 팽창도 동시에 일어나게 되어 1960년대에 미국의 모든 중요 대학들이 과학사학 강의와 전공 과정을 개설하여 연구 인력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연구 수준도 높아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