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부 (문단 편집) == 설명 == 사실 단어 뜻을 보면 과부는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이고 미망인은 '죽지 않은 사람'이다. 즉, 미망인은[[사티| __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하는데[* 이렇게 죽으면 열녀로 대우받는다.][* 다만 실제로 미망인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시절에도 진짜로 따라죽으라고 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고위층에서 주로 쓰였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과부에 대한 미칭으로도 사용되다가 2017년 경부터 국립국어원 측에서 어원을 근거로 차별성 단어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다는 뜻__]]으로 주로 과부 본인이 겸손의 의미를 담아 사용했다. 근현대 무렵 쓰여진 한국 소설에서는 '과수(寡守)'나 '과수댁'이라고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전해졌다. 과부를 많이 만드는 기계는 [[과부 제조기]]라고 불린다.[* 주로 '''사람이 탑승해서 운용하면서''' 성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대형병기들이 해당된다. 아주 가끔은 성능이 너무 좋아서 적병들을 학살해대는 경우에 붙는다. 어느 쪽이든 과부들을 대량 양산하는 것은 마찬가지.] 실제로 전쟁 한번 터지면 [[고아]], [[독거노인]]과 함께 우르르 생기는 사람들이다.[* 징병제 국가에서 징집 당하는 건 전부 10 ~ 20대 젊은 남성들이며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도 죽어나가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에 비해 월등히 증가한다.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전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군대에 간 남자들이 많이 죽어서, 실제로 성비가 심하게 뒤틀렸으며 독일이나 소련의 경우가 그렇다. [[https://www.quora.com/What-proportion-of-Germanys-adult-male-population-died-during-WWII-How-did-it-affect-inter-sex-relations-back-then|독일]] [[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Russia#/media/File:Russia_Sex_by_Age_19460101.png|소련]]] 이러니저러니 해도 전 세계 문화권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성은 많았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짧았던 것은 기본이고, 징병과 노역은 물론 밖에서 일을 하다보니 짐승에게 습격당한다든가 일사병이나 과로로 쓰러진다든가...]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대상일을 하는지라 남편이 객사할 확률이 많았던 아랍세계에서는 [[하렘]]이라 하여 '''과부의 후견인이 되는''' 제도도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열녀라 하여 과부가 수절하고 세상을 떠나면[* 최고로 좋은 건 바로 따라 자살하는 것. 다음이 자식들을 키우거나 시부모님을 모시다가 세상을 떠나면 두 번째(효부)였다.] 국가에서 치하하여 열녀문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열녀가 손쉽게 있기는 힘들고, 강력한 [[유교]] 문화권에서 재혼하기도 힘든지라 가문 내의 과부는 골칫거리였다. [[보쌈]]이라 하여 가문의 명예도 지키는 방식의 재혼이 널리 이루어지거나, 혹은 '''과부를 살해'''해서 자살했다 속이는 흉흉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반대로 공개적으로는 죽었다고 장사지내고 재혼을 시켰다. 이와 비슷한 조선시대 이혼 풍습이 있는데, 조선 전기에는 이혼이 자유로웠고 후기에도 평민의 경우는 이혼이 자주 있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풍습은 대체적으로 18세기 이후다. 예를 들어 이 시기까지도 남자가 처가로 장가가는 일이 흔했고 여성호주도 많았다. 어쨌든 서로 저고리 섶을 가위로 자르는 것으로 이혼을 결정했는데, 이를 사정파의(事情罷議)라고 한다. 이혼한 여자는 그 옷을 입고 자정쯤 서냥당 근처에 서있다가 지나가는 첫 번째 남자와 재혼해야 했다고 하는데, 이걸 습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통은 미리 같이 살기로한 남자와 약속하고 기다렸다가 만났다고 한다.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 과부와 관련한 또 하나의 괴담은 납치, 살해인데 과부나 재혼, 3혼 팔자가 있다고 점괘가 나온 양반집 딸을 해결하기 위해, '''외간 남자를 납치하여, 잠자리를 함께하게 한 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그 부모도, 딸도 셋 다 정말 독해야 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봉이 김선달 이야기도 있는데 내용인즉 딸이 과부 팔자라는 말을 들은 부잣집에서 김선달을 납치했는데 김선달 답게 꾀를 써서 살아난 건 물론이고 심지어 이런 일을 내켜하지 않았던 부잣집 딸이 준 보물까지 가져가서 개이득을 봤다는 이야기다. 헌데 이후 김선달은 아내와 자식이 생기는데 이 아내가 그때의 부잣집 딸이라는 얘기도 있다.~~멀쩡히 산거 보면 돌팔이가 사주 봤나보다.~~] 전근대시대는 강력한 여초사회가 된 일부 지역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문화권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도 적고, 소득은 적기 때문에 과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거나, 강제로 그렇게 된다. 남존여비가 강한 문화권일수록 여성의 상속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과부가 되면 그 재산을 가문이 먹고 과부는 가문에서 쫓겨나 더 험한 상황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끔찍할 정도로 어려운 곳은 [[탈레반]]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창궐하고 있는 지역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나 재혼조차 불가능하며, 혼자 밖에 나갈 수 없으니 구걸조차 할 수 없다. 이웃집의 품앗이 심지어는 [[매춘]] 비슷한 일 정도가 한계. 전쟁이나 테러로 남성 사망률이 높아 과부도 많은데 이러한 실정이니 어머니가 멀쩡히 건강하게 살아 있는데도 키울 수 없어 버려지거나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에 가는 아이가 넘쳐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다고 아닌쪽은 문제가 없냐? 예를 들어 부자 남편에게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 여성들도 험한 일을 적지 않게 겪었다. 특히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때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여자들 상당수가 이런 부자 남편과 살았던 과부들이었다. 겉으로는 종교의식이었지만 실상은 '''남편의 사망으로 재산을 물려받게 된 과부의 재산을 뺏기위해 했던 행동이다.''' 사실 문화권을 막론하고 모든 순장을 비롯한 과부의 사회적 살해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상속권때문이다. 과부에 대해 대우가 시궁창인 곳의 끝판왕은 '''[[인도]]'''다. [[명예살인]]인 [[사티]]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결혼 단계에서부터 [[지참금]]을 무제한으로 요구해 부인을 압박하는 것으로 여성에 대한 권리가 밑바닥인 것도 모자라, 더이상 지참금을 요구할 명분이 없고 상속권을 주장할지도 모를 과부에 대해 다른 지역은 적어도 남편 죽었다고 '''과부 된 여자보고 죽으라'''고 하는 건 없거나[* 그 [[이슬람]]권에서조차 과부더러 대놓고 죽으라고 강요하는건 없다. 이슬람권에서도 절반의 상속권과 함께 여성에게도 일정 정도의 여권은 준다. 그게 남성에 비해 열악해서 문제지.] 있었어도 없어졌다.[* 중국,조선에서 있긴 했지만 요즘은 그랬다간 [[은팔찌]]를 끼고 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중국, 조선도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높이 쳐줬지 강요나 따라 죽을 것을 빙자한 살인까지 좋게 여겨준건 아니다.] 하지만 사티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요즘은 사티를 벗어날 수도 있지만 역시 과부에 대한 시궁창스런 대우는 여전하다. 그런 암흑기를 지나고 나서야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현시대 개혁을 한 종교에서 과부는 고아, 독거 노인 등과 함께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이며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줘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가령 크리스트교의 성경에서는 과부와 고아를 찾아 돌보는 것이 신의 뜻이며, 그들을 괴롭히거나 학대하는 것은 신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세 때 귀족 과부와 분쟁이 있던 어느 기사가 과부가 소유한 방앗간을 파손하고 이에 배상을 전혀 하지 않자 교회측에서 파문을 선포한 사례도 있다. 예수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하는 자들이야말로 엄하게 단죄받을 것'이라고 말하며 위선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다른 예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닢을 헌금으로 바치는 것]]을 보고 '저 과부야 말로 가장 많은 돈을 헌금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사실 이것도 앞서 말한 비판이다. 그 가난한 과부는 성전에 헌금을 바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도 그러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 [[유교]]에서도 [[맹자]]는 [[환과고독]]이라 하여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이라고 불리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특히 배려하는 것이 왕도정치라고 주장했다.[*출처-맹자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