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문단 편집) == [[솔로몬 제도]]의 섬 == [include(틀:솔로몬 제도 관련 문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olomon_Islands_-_Guadalcanal.png|width=560]] Guadalcanal [[솔로몬 제도]]의 섬 중 하나로, 수도인 [[호니아라]]가 위치한 섬이다. 면적은 5,336km^^2^^로 솔로몬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현지 원주민 언어로는 이사타부(Isatabu)라고 한다. 과달카날이라는 이름은 이 섬을 처음 방문한 유럽인인 알바로 데 멘다냐(Álvaro de Mendaña)가 자신의 탐험대 대원이 태어난 곳인 [[스페인]] [[세비야]] 과달카날(Guadalcanal)에서 따온 것이다. 19세기에는 [[영국]]이 통치했고 영국령 솔로몬 제도 보호령의 일부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제국]]이 이 섬을 점령했다. [[미군]]과 [[영국군]], [[호주군]], [[뉴질랜드군]]은 1942년과 1943년에 걸쳐 이 섬을 탈환하기 위해 [[과달카날 전역]]을 벌였다. 대규모 전투 총 5번, 소규모 교전은 수백 번이 벌어졌다. 연합군은 우세한 해상 전력으로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어놓았고 이 때문에 수많은 일본군(2만 명)이 과달카날에서 굶어죽었는데, 그래서 일본군은 이 섬(ガダルカナル島: 가다루카나루토)의 줄임말인 가토(ガ島)와 소리가 같은 가토(餓島: [[기아(동음이의어)|기아]]의 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론 미군도 고생했다. 이 당시 과달카날 전역에서 미국 해병대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당시 실전에 투입되었던 [[제1해병사단(미국)|제1해병사단]]의 엠블럼에는 'Guadalcanal'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전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과달카날 전역]] 문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고는 영국령 솔로몬 제도 보호령의 수도가 이 섬의 호니아라로 옮겨왔으며, 1978년에 솔로몬 제도가 독립한 후로는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 솔로몬 제도의 행정구역 과달카날 주와 호니아라 특별시로 구분되었다. 이곳 주민들은 인접한 말라이타 섬 주민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말라이타 섬 주민들은 과달카날 섬 주민들과 여러 갈등을 빚었으며 말라이타 섬 주민들이 경제권을 쥐자 이사타부 자유운동(IFM) 같은 과달카날 민병대들이 말라이타 주민들의 부동산 등을 몰수했다. 바르톨로메오 울루파알루 총리가 미온적인 대처를 보이자 말라이타 주민들은 말라이타 독수리 부대(MEF)를 세우고 울루파알루 총리를 쫓아냈다. 이어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가 새 총리가 되었다. 이 내전 상황에서 수천 명이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