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자/기타 (문단 편집) ==== [[공자식인설]] ==== 공자에 대한 낭설 중 [[인육]]을 먹었다는 설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팔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이다.''' 특히 1990년대에 [[재미교포]] 폴 임 박사가 쓴 '책 속의 책'에 나온 공자가 인육을 즐겨 먹었다는 내용으로 인해 이러한 인식이 퍼졌다.[* 참고로 해당 책은 아프리카의 [[코뿔소]]는 뿔이 하나 인도의 코뿔소는 뿔이 두 개라는 오류도 범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극우파의 사주를 받는 대만인 어용학자 황문웅이 이런 주장을 더 퍼뜨렸다. 본래 그는 [[양고기]], [[사슴]][[고기]], [[토끼고기]] 등의 고기로 만든 일종의 [[젓갈]]인 해(醢)를 즐겼는데, 이를 중죄인의 시신을 젓갈로 만들어 버리는 당시의 형벌과 연관시켜서 마치 공자가 사람고기로 만든 젓갈을 즐긴다고 왜곡한 것이다. 식인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유가의 이념과 몹시 다를 뿐더러 공자는 제자인 자로가 권력 싸움에 휘말려 죽고 그 시체가 해로 만들어지자 그 충격으로 평시 즐겨먹던 평범한 해를 다시는 가까이하지 못했다. 공자의 유학을 계승한 맹자의 서적인 "맹자- [[양혜왕]] 편"을 보면 "옛날에 공자께서는 '[[토우|처음으로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그것을 [[순장]]에 쓰이게 한 자는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 하시며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조차도 귀히 여길 것을 역설하셨습니다."라며 맹자가 양혜왕에게 백성의 목숨을 중히 여길 것을 강조하는 구절이 나온다. 진짜 [[순장]]은 커녕 인명이 희생되지 않는 가짜 순장조차도 혐오한 공자이니만큼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 유교를 떠나서, 원래 식인 행위는 현대에 비해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으며 인권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던 고대 중국에서도 분명한 비정상적 행위였다. 물론 전근대시절에는 영양상태나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긴 전쟁이나 [[기근]]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종종 나오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나오는 행위였지, 고대인이라고 해서 "먹을 거 없으면 사람 좀 잡아먹을 수 있지"란 식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설령 극단적 상황에서 나온 식인이라도 두고두고 지탄을 받는 행동이었다.[* 원래 공자는 주공 단을 가장 존경했는데 이는 주공이 과거 [[은나라]]에 있었던 괴이한 풍습을 순화하는데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괴이한 풍습에는 [[순장]], [[식인]] 등이 있었다. 그러니 공자가 식인을 했다는 말은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