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원 (문단 편집) ==== [[도시공원]] ==== 한국 최초의 근대식 도시공원은 [[1897년]]에 조성된 [[서울]] [[탑골공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9년 앞선 [[1888년]]에 조성된 [[인천]]의 [[자유공원]]이다. 당시의 인천은 [[강화도 조약]]으로 3항을 개항한 이후 각국의 조계지로서 외국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고, 그들의 손에서 한국 최초의 도시공원은 탄생했다. 그리고 9년 뒤에는 서울의 탑골공원이 조성되었는데, 이는 한국 정부에 의하여 생긴 최초의 근대식 도시공원이다. 다만 탑골공원은 황실의 전용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가 [[경술국치]] 이후인 [[1913년]]에야 민간에게 개방되었다. [[1920년대]] 일본 자국의 경기부양에 힘입어 독점 산업자본이 조선으로 투입됨에 따라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더욱 공업지구의 탄생과 교통의 발달이 이루어지며 [[도시]]는 급속히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도시는 무질서하게 팽창하였고, 이에 문제를 느낀 [[조선총독부]]는 본격적으로 '조선시가지계획령'을 제정하며 도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도시계획]]에는 도시공원을 비롯한 풍치지구의 마련이 포함되었다. 또한 중산층의 소비와 여가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공원에 위락시설을 갖춘 형태의 [[유원지]]를 도시 근교에 만들었다. [[경성]]의 [[장충단공원]]이나 [[부산]]의 [[중앙공원(부산)|중앙공원]] 등이 이 당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다만 옛 [[창경원]] 등 조선 내 문화재를 훼손하고 공원을 지은 경우도 많았다. 광복 이후 군사정권이 아동 육성을 위한 교육 목적의 공원을 여럿 지었고, [[어린이회관(서울)]]이 대표적이다. 민주화 이후엔 환경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민도 좋은 환경을 선호하여, 쓰레기 매립지 위에 조성된 [[월드컵공원]]이나 군기지 이전으로 생긴 땅에 조성된 [[용산공원]] 등 님비시설을 공원화하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