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양왕 (문단 편집) == 생애 == 왕요는 제20대 [[신종(고려)|신종]]의 7대손으로 신종의 차남이었던 [[양양공]](襄陽公) 왕서(王恕)의 직계였다. 부계로는 제26대 [[충선왕]]의 제3비 정비의 아버지인 서원후 왕영(王瑛)의 현손자로, >고려 제20대 왕 신종 → 양양공 → 3남 시안공(始安公) 왕인(王絪) → 서원후(西原侯) 왕영(王瑛) → 장남 익양후(益陽侯) 왕분(王玢) → 장남 순화후(淳化侯) 왕유(王瑈) → 장남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왕균(王鈞)[* 작위가 정원군(定原君) → 정원백(定原伯) → 정원부원군 → 삼한국 인효대공(三韓國 仁孝大公) 순으로 바뀌었다.] 순이었다. 그래서 [[충선왕]] 이후의 고려 군주들 중 유일하게 [[한몽혼혈]]이 아닌 순수 고려인(한국인)이었다. 폐왕 왕우, 폐왕 왕창을 빼고나면 제31대 [[공민왕]]의 뒤를 이은 것이 공양왕인데, 공민왕은 제17대 [[인종(고려)|인종]]의 셋째 아들이었던 제19대 [[명종(고려)|명종]]의 7대손이고, 공양왕은 인종의 다섯째 아들 [[신종(고려)|신종]]의 7대손이므로 공민왕에게 공양왕은 부계로는 8대조인 인종에게서 갈라진 '16촌 칠종제'였다. 한편 공양왕의 어머니 삼한국대비 왕씨는 제25대 [[충렬왕]]의 증손녀로 '8촌 삼종남매'이자 '15촌 육종숙'인 정원부원군 왕균과의 사이에서 공양왕을 낳았다. 하여 모계로 따져 보면 공민왕과 공양왕은 7촌 숙부-조카 사이였다. 어머니는 [[연덕부원대군]] 왕훈의 딸이었다. 그리하여 공양왕은 [[충렬왕]]과 [[정화궁주]] 왕씨의 현손[* 정화궁주의 아들 강양공의 3남 연덕부원대군의 외손자.]이 되었다. 덧붙여서 서원후 왕영과 정화궁주는 남매였다. 왕위에 오르기 전엔 부유한 왕족으로서 큰 근심없이 여유롭게 지내왔다. 하지만 이성계 세력이 그를 왕위에 올리려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