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손찬 (문단 편집) === 원소와의 비교 === 원소의 또 다른 경쟁자인 조조의 전기인 무제기에 '원소'의 이름이 121회 나오는데 그보다 훨씬 짧은 공손찬전엔 원소의 이름이 105회가 나올 정도로 공손찬에게 원소는 그야말로 숙적이었다. [[원소(삼국지)|원소]]가 연의와 정사를 가리지 않고 가문빨만 있는 무능한 인물이라는 왜곡을 받기 때문에, 공손찬이 원소보다 역량은 뛰어나지만 가문의 힘이 없어서 패배했다는 해석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건 굉장히 왜곡된 해석이다. 일단, 원소는 절대 가문빨을 가지고 성공한 인물이 아니었다. '''원소는 아예 서자 공손찬에게도 얼자([[노비]] 자식)라고 까였던''' 인물이다.[* 그래서 원씨 가문은 대체로 원소가 아니라 원술을 따랐~~고 그러다 망했~~다. 또, 효웅답게 원소도 사실상 자기 가문을 멸망할 지경에 몰아넣고는 이를 통해 명분을 얻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초기의 공손찬은 [[군대]]조차 없었던 원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동북의 제왕이었지만 변방에서 명성을 쌓은 인물이라 당대 명사들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믿을만한 건 스승 [[노식]]의 인맥인데 노식이 원소에게 몸을 맡기면서 남은 노식계 인맥은 유달리 친하게 지냈던 유비밖에 없었고 그 유비도 나중엔 공손찬을 떠났다.[* 물론 공손찬 본인이 상관이자 명망높은 황족인 유우를 죽이고 폭정을 거듭했으므로 이걸 가지고 유비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후 공손찬은 [[유위대|점쟁이]], [[이이자|비단장사]], [[악하당|말장수]] 같은 인물들을 신임하고 관료로 기용했는데, 이들이 용렬한 데다 난폭하고 부정축재에만 열심이라서 백성들이 싫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공손찬군의 유일한 모사 정도로 알려진 [[관정(삼국지)|관정]]도 원대한 계획도 없으면서 아첨하기만 잘하는 [[소인배]]였지만 유독 공손찬에게 신임을 받았다. 애초에 공손찬 휘하에 명사가 없어 이런 인물만 기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한계도 있지만... 유비를 제외하고도 훗날 포텐을 터트리는 [[조운]]이나 [[전예]]같이 특급 인재도 있었는데 중용되지 못했다. 게다가 조운과 전예가 인격적으로 크게 흠이 없는 좋은 인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