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손찬 (문단 편집) === 괴짜 === 당시 '''중국 최강의 세력'''이었으며 미칠듯한 무력과 포스를 자랑했던 [[항우]]와 비슷한 이미지를 지녔다. 특히 항우가 장수로는 최고여도 군주로써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처럼, 공손찬도 군주의 자질은 상당히 떨어졌다. 다소 극단적인 평가의 경우, 공손찬은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유교]] 도덕 자체를 거부'''하는 파천황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는 해설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과도한 추측이지만, 전체적인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공손찬이 사대부를 비롯한 후한의 지배층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어쩌면 모친의 신분이 낮았던 것 때문에 차별을 받다가 자수성가하여 실력을 인정받고 출세한 과거에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상인들을 관료로 기용했던 것은 속국장사 시절부터 북방의 군권을 점차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군납업을 맡았던 상인들과 결탁해 모종의 관계를 맺어오며 이들을 지지층으로 거느렸을 가능성을 감안해야겠지만 사대부를 배제하고 '''그나마''' 관료를 시킬만한 지적 능력이 있는 계층이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단, 대학자인 노식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본인 또한 학문에 능하다고 평가받던 공손찬이 유교적 가르침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놓고 거부했는지는 미지수에 속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어 공손찬의 참모 [[관정(삼국지)|관정]]은 죽기 전 "[[군자#s-1]]는 남을 위태롭게 만들고 혼자 살아남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또한 유교의 '충(忠)'은 지배자들에게 더없이 유리한 프로파간다였므로 쉽사리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장인 유태수가 좌천되었을 때 북망산에 가서 흠향하고 죽음을 다짐하였던 것이나 스스로 의종(義從)[* 양주의종과 같은 것들은 오랑캐 귀순 용사를 의미하나 여기서의 의종은 의로 뭉친 종사에 해당한다. 즉 자원병. 또 <<한서>> 이현의 주에 50세 이상의 즉시 소집가능한 잡색군의 의미로 쓰인 것 등이 있다.]을 이끌고 적(오랑캐)를 친 것은 오상의 하나인 義[* 부당함을 참지 않고 일어서는 것을 말한다.]에 해당한다. 그렇다곤 해도, 유교적 가르침을 버린다는 것이 곧 모든 도덕관념을 버린다는 얘기는 아니므로 자세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 이상 아리송한 지점에 놓일 것이다. 공손찬의 참모 관정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그가 공손찬이 아니라는 점, 유언이라는 점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 또한 유교의 충이 지배자에게 더없이 유리한 프로파간다였던 것은 맞지만, 공손찬이 충에 충실했는지 역시 미지수이며, 북해태수 시절 주자사와의 반목은 그가 충에는 별 감명을 못 받았던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의종을 구성했던 일이나 장인과의 사건을 통해서 공손찬이 유교적 가르침을 받들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장인의 좌천을 두고 분발을 다짐하는 것은 굳이 유교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북망산에 가서 흠향하는 것은 유교적 의례기도 하겠지만 도교와도 관련이 있다. 의종을 구성했던 것이 오상의 하나인 의에 해당한다고 하는 건... 고대 로마 제국에 효자나 효녀가 났다고 했을 때 그게 유교에서 말하는 효에 해당하겠지만 딱히 고대 로마인이 유교를 숭상해서 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를 기준으로 공손찬은 괴짜였던 것이 확실하다. [[동탁]]도 무자비하나 점쟁이와 장사치를 참모로 기용하는 괴상한 짓을 벌이진 않았으며, 한족치고는 놀라울 만큼 [[기병]] 육성에 투자를 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기병전술에 뛰어났던 [[국의]]에게 개돌했다가 털리고, 원소의 정치 선전술에 깨갱하여 자신의 세력이 찢어지자 아예 역경에 틀어박히는 것으로 기행의 절정을 이룬다. 게다가 공손찬의 괴상한 인간성은 이 와중에 또 드러난다. 유우와의 대결에서 본디 민가는 성벽 안에 지어 놓는 게 정석인데 공손찬은 고의로 성벽 바깥에 민가들을 '''성벽에 바짝 붙여서''' 일렬로 나열시켜 배치해 놓았다. 이게 참 괴상하면서도 더러운 전술인데, '내 성을 공격하려면 이 백성들을 쳐죽여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린, 한 마디로 정상적인 통치차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거리이다.[* 약 20년 후에 [[유장(삼국지)|유장]]과 [[유비]]와 전쟁 중에 유장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청야전술로 유비를 몰아내자는 [[정도(삼국지)|정도]]의 묘책을 '적을 막아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라는 말을 하며 거절했는데, 공손찬은 이런 짓을 훨씬 심각한 방법으로 한 것이다. 유장도 군주로써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있었던 최소한의 애민심도 없다는 방증.] 그런데 공손찬은 이 전술로 유우를 이겼다. 유우가 백성들이 불쌍해서 공격을 못 하는 사이에 공손찬은 유우를 공격해서 체포한 것이다. 위에서 공손찬과 비교되던 항우 역시 초나라 명문가 출신으로 고대 중국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은 하고 있었을텐데, 자기 성깔대로 전횡을 일삼았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항우는 (이름뿐이긴 하지만) 자기 자신이 초나라 천자로 세운 [[초의제]]를 죽이거나 분봉을 개판으로 한 데다가 사람들을 학살하는 등 과장 조금 보태서 중국 전체를 적으로 돌려버리는 정신나간 짓을 하다가 스스로의 목을 졸랐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걸 실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인데, 공손찬 역시 머릿속에 유교적 지식이 있다고 해도 자기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우선으로 둔 인물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