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손무지 (문단 편집) == 최후 == 하지만 그의 군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옹림 사람들이 공손무지의 학정에 원망해 그곳에 놀러온 공손무지를 죽여버린 것이다.[*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무지는 이름 그대로 무지했다"라고 깠다(...)] 제나라 군주 자리가 비자 외국으로 망명가 있던 공자 규와 공자 소백[* 제 환공의 이름이다.]이 서둘러 제나라로 돌아오기 위해 출발한다. [* [[관이오|관중]](管仲)은 공자 규(糾)를 모시고 [[노나라]]로, [[포숙]]은 공자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망명간 상황이었다.] 이때 관중이 공자 소백을 활로 쏘아 맞혀 죽인 줄 알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결국 여유있게 제나라로 향한 공자 규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소백이 이미 도착하여 즉위한 후였다. 결국 공자 규 일행은 노나라로 돌아갔으나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 이기고 공자 규를 죽이라고 요구하여 공자 규는 자결한다. 관중과 함께 공자 규를 섬기던 소홀은 주군을 따라 자결하였지만 관중은 살아남아 제나라로 끌려간다. 포숙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관중은 제 환공을 도와 나라를 이끌고 관중의 도움으로 제 환공은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된다. [각주] [[분류:제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85년 사망]][[분류:중국의 살해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