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산주의 (문단 편집) ==== 공산주의의 애매모호함 ==== 공산주의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서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서 국가가 완전히 해체된 이후의 사회를 말한다. 즉 상부토대를 이루거나([[마르크스주의]]) 혹은 지배계급([[아나키즘]]과 같은 분류)이라고 할 이들이 완전히 사라저 최종적으로는 모든 계급이 사라진 '''사회'''를 말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했던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국가]]들은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관에서 멈췄다. 물론 [[아나키즘]]이나 [[자유의지주의]]를 주장했던 이들은 이 공산주의를 실행하여 [[CNT]]-FAI의 지역자치위원회, [[자유지구]]등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제1세계]],[[제3세계]]를 반대하거나 심지어 [[제2세계]]를 반대하는 세력이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할 때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쓰곤 했지만[* 스탈린주의 때문에 공산주의 이미지가 나빠진 이후론 트로츠키주의의 영향으로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자신들 스스로도 공산주의를 통일적으로 정의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주류 체제에 대한 복수심, 불만, 분노를 공산주의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2세계]]를 옹호하는 탱키(Tankie)나[* 엄밀히는 [[헝가리 혁명]]진압을 옹호하는 이들을 비하적으로 부르던 명칭이였는데 현재 [[스탈린주의]]자들을 비하적으로 부르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언더도그마]]를 내세우는 일부 [[SJW]]가 그런 성향이 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반공주의]]자들이 주류 체제에 비판적인 세력을 빨갱이몰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즉,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한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과거, 현재 모두 [[코뮌주의]] 사회에 대한 해석은 여러모로 달랐다. [[러시아 혁명]]의 장에서 [[블라디미르 레닌]]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니콜라이 부하린]], 마리아 스피리도노바,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의 볼셰비키, 볼셰비키 노동자 반대파, 좌파 사회혁명당, 아나키즘 등의 인물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사회, 코뮌주의 사회'의 해석도 달랐으며 [[스페인 혁명]]에서의 아나키스트와 스탈린주의자의 코뮌주의 사회도 달랐다. 그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에서 '난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라고 했을 때, 공산주의라는 같은 단어를 말했지만 그 의미는 모두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되며 이는 곧 소위 말하는 '빨갱이' 몰이에 여러 힘이 되었다. 왜냐면 현실에서 코뮌주의 혹은 코뮌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코뮌주의를 지지해요 라고 했을 때, 너는 일당독재를 지지하냐, 너는 대숙청을 지지하냐, 너는 학살을 지지하느냐와 같은 문제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곧 '''아 대다수의 민중은 이 멋진 코뮌주의란걸 모르다니! 내가 계몽시켜야겠다!'''라는 계몽주의적 물길로 흘러가기도 하고(실제로도 그러는 이들도 있고) 이는 오히려 [[계몽주의]]적 개인의 독단적 혁명을 반대하는 [[코뮌주의]]를 배신하는 행위가 되었고,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도 경직된 이상한 자신들만의 [[코뮌주의]] 세계관을 만들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고 공산주의에 접근하는가에 달려있다. 공산주의적 공동생활 형식 자체는 절대로 개인의 종속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일정한 공동생활 형식 속에서 개인에게 부여된 크고 작은 공간은 여러 사회제도에 도입된 개인적 자유의 필수성에 대한 관점에 의해 정의된다. 단 이 개인이 종속적인, 피라미드적인 형식에 놓여있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 공산주의와 아나키즘 하지만 이들이 말했던 코뮌주의 사회가 다 달랐지만 하나 만큼은 명확했다. 모두가 개인의 능력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일하고 필요로 하는 만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말했다. 오히려 이들은 자본주의가 개인의 능력을 무시한다고 봤고[* 마르크스는 이미 자본론 등의 저서에서 [[자본주의]]는 이미 사유재산의 사유화를 철폐하고 독점화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싶어하던 일을 막는다고 봤다. 이들은 대신 그 자리에 민주적으로 노동자들이 직접 모여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의견 토론을 하는 새 사회의 장을 열어보고 싶었고, 그 것이 진정 자유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하나의 계급의 일당적 독재는 최종적으로는 사라저야한다고 봤고 이를 모두가 동의하였다.[* 즉 개인주의를 이유로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대한 몰이해다, 공산주의의 최종적 목표는 개인주의를 위한 공동체주의이며 개인을 위한 민주주의이며 개인의 개성을 추구한다.] 이행기 국가를 지지하던 [[마르크스주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부르주아 독재]]로 대표되는, 즉 부르주아의 권력이 [[노동자]]의 권력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는 비판의 대상이였지만 그렇다고 [[노동자]]의 일계급 독재 역시 사라저야한다고 봤다. 그리고 계급 독재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기에 이들은 국가가 사라저야한다고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목표는 하나로 귀결된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 하나의 계급이 영도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농민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사회를 바꾸며 계속해서 지금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자.''' >모든 산업 각각에 맞는 단 하나의 최선의 방법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제강 산업과 교육을 같은 방식으로 조직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구상 모든 문화와 지역에 맞는 단 하나의 최선의 방법도 있지 않을 것이다. 민족의 역사나 전통, 기후, 천연자원에의 접근성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원주의적인 연방 체계를 구성하는 최대의 장점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방식을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사례들로부터 배울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는 “이행기” 사회라 불릴 수도 있다. 정확하게는, 언제나 변화 도상에 있는, 언제나 이행중인 사회 말이다. >---- >웨인 프라이스 - [[https://kr.theanarchistlibrary.org/library/wein-peuraiseu-guggayi-ceolpye|국가의 철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