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병우 (문단 편집) === 세벌식 [[타자기]] 개발 === ||<-5>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장.svg|width=26]]]]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ffffff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 || 550호 ||<|2> ← || '''551-1·551-2호''' ||<|2> → || 552호 || || 압사기 ||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 [[현대 포니|현대자동차 포니 1]] || 오른쪽에 초성·가운데에 중성·왼쪽에 종성을 배치하여 입력하는 체계인 '[[세벌식]] 자판'[[https://doi.org/10.8080/2019500000074|*]]을 1949년부터 개발하고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6.25 전쟁]] 때 이미 한글을 [[타자기]]로 빠르게 입력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연구에 힘입어 한때 세벌식 점유율은 월등하게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세벌식 [[타자기]] 특유의 빨랫줄 글꼴(아래 세벌식 워드프로세서 개발 문단 참고)이 '이' 자를 '일' 자로 위조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따라 정부는 세벌식 [[타자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세벌식보다 타속이 느린 네벌식 [[타자기]]를 표준으로 지정했다. 또한 1983년, 빨랫줄 글꼴의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공 정부는 네벌식을 [[마개조]]한 [[두벌식]][* 이 두벌식은 정작 현대한글에 최적화된 자판도 아니었고, 당시에 이미 나와 있던 박영효-송계범 두벌식보다도 못한 물건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https://www.sciencetimes.co.kr/news/quot두벌식-한글자판-타자기는-불편-quot/|여기]]를 참고.]을 표준으로 지정하고 세벌식의 사용을 계속 제한했다. 이러한 탄압들에 대응하여 공병우는 정부에 반발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코렁탕]]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https://jisike.ebs.co.kr/jisike/vodReplayView?siteCd=JE&prodId=352&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3063743|참고 동영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