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개처형 (문단 편집) ==== 영국 ==== [[계몽사상]]이 뚜렷하고 권력분립이 이루어진 시기(명예혁명 이후)의 영국에서는 창고 2개를 불지른 죄로 8세 소년을 사형시킨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구경하면서 노래하고 웃었다. [[영국]]에서는 어린 아이가 손으로 사형수를 만지면 행복을 가져다 주고, 교수대의 나무조각을 빨거나 [[이쑤시개]]처럼 사용하면 [[치통]]을 막는 약이 된다는 미신도 널리 퍼져 있었다. 해적영화에 흔히 나오는 소품 중 해골이 갇혀있는 새장 모양의 작은 철창을 교수대같은 곳에 매달아 놓은 것이 있는데, 이는 본래 [[효수|사형수의 시신을 본보기로 전시하는 것으로서]] 지빗팅(Gibbet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1751년에 재정된 영국의 살인처벌법 Murder Act 1751에 의한 것이었는데, 살인자의 시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매장하지 않고 [[카데바]]로 사용하거나 방치할 것을 명시한 이 규정 때문에 1832년 마지막 집행때까지 많은 이들이 교차로나 수로 근처에서 썩어가는 시체 때문에 지독한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19세기, 영국 상류사회의 신하들은 금요일이나 토요일마다 부인을 데리고 감옥으로 행차했다. 감옥에 갇힌 [[창녀]]들이 서로 대결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좋은 좌석을 사 구경거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아달라고 감옥소에 부탁까지 했다. 영국의 신사숙녀들은 이 흥미로운 행사에 다니면서 사형 집행인의 이름, 그들의 행동, 창녀들을 파악했다. 지난 경기, 또는 다른 창녀와 비교하거나 예전의 상처와 비교하는 일을 에티켓으로 삼았다. 1810년에서 1826년까지 영국 [[런던]]의 미들섹스 백작령에서만 2755명이 사형을 당했다. 미들섹스 백작령과 런던 전역에는 약 800만 명이 살았다. 3천명 당 한 명이 사형당한 것이다. 런던의 명소 중 하나가 사형대인데, 어떤 사형대에는 여러 높이의 기둥과 21개의 올가미가 있었다. 20세기 초까지 약 500년 동안 연속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 블라디미르 메진스키, <러시아와 그 적들 그리고 거짓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