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골품제 (문단 편집) == 성골과 진골 ==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진덕여왕|진덕왕]](眞德王)조의 654년 03월(음) 기사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나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까지 28명의 왕을 성골이라 하고, 무열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이라 하였다.'''(國人謂始祖赫居世至眞德二十八王, 謂之聖骨, 自武烈至永校勘王, 謂之眞骨)." 단순히 이 기록만으로는 성골과 진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지만, 삼국유사에 '성골 남자가 없어 성골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어 같은 왕족 중에서도 왕위 계승권을 가진 계통과 그렇지 못한 계통이 따로 있었다고 해석된다. 이 성골과 진골의 구분이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구체적인 기록은 없어 논란이 많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성골은 부모가 모두 성골(왕족)이고, 진골은 부모 중 한 쪽이 성골(왕족)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이 역시 추측일 뿐 성골과 진골의 명확한 구별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양친이 왕족이면 성골이고 편친이 왕족이면 진골이라고 단순하고 확실하게 나눌 수 있다면, 진골 남녀의 혼인으로 나는 아들도 성골이니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즉위할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성골을 궁정 내에 거주할 자격을 가진 직계 왕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진지왕이 폐출되면서 진지왕 후손들은 자연스럽게 진골이 된다는 것. 소수설로는 [[비형랑]]과 관련해서,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춘]]을 비형랑으로 보는 설이 있다. 진지왕이 폐위된 후에 과부가 된 도화녀와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 비형랑, 김용춘이라는 것. 이 경우 비형랑 전설의 도화녀가 성골이 아니니 성골 + 진골의 조합으로 자연스럽게 진골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