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창성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선린인터넷고]] 시절에는 잘 던지기는 하는데 임팩트는 약한 투수였다. 유급 후 고3이던 2003년 광주일고와의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패하며 준우승을 경험했다. 프로 지명을 받는 데 실패했고 [[경성대학교 야구부|경성대]]에 진학하여 에이스로 급부상한다. 당시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현준]]--과 함께 대학 야구의 사이드암 양대 산맥으로 활약하며 2008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된다. 하지만 부상으로 데뷔 연도는 2009년[* [[경성대학교 야구부|경성대]]에서 혹사 논란까지 있을 정도로 투구 이닝이 많았고, 그 덕분에 팔꿈치에 무리가 갔다는 설이 정설. 실제로 [[김기표(야구선수)|김기표]] - [[장원삼]] 듀오가 졸업한 2006년에 고창성은 대학야구 투수 중 유일하게 100이닝을 넘게 던졌다. [[경성대학교 야구부|경성대]]의 특정 투수 1명(때로는 1명 추가) 줄곧 돌리기 계보는 이후 [[이상백(야구선수)|이상백]] - [[임현준]] - [[임준섭]] - [[이민우(야구선수)|이민우]] - [[김명신]] - [[공수빈]]으로 이어진다. 그 중 [[이민우(야구선수)|이민우]]는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후에도 팔꿈치 부상 때문에 일찌감치 수술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한 뒤 17시즌 말이 되어서야 1군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다.]으로 연기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