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징 (문단 편집) === [[암살]]당하다 === 기세등등해진 고징은 이제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심복인 진원강(陳元康), 최계서(崔季舒), 양음(楊愔) 등과 어떻게 황제가 될까 의논했다. 그의 시종 중에 양나라 서주 자사 난흠(蘭欽)의 아들 난경(蘭京)이 있었는데, 전쟁 중에 사로잡은 [[포로]]였다. 그의 아버지 난흠이 몸값을 지불할테니 풀어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여러 번 거부했다. 더불어 난경을 구타하면서 욕을 해 이에 원한을 품은 난경은 몰래 아우 난아개(蘭阿改)를 포함한 6명과 고징 암살을 모의했다. 어느 날, 고징이 심복들과 의논하던 중 난경이 음식을 날랐는데 그가 밖에 나갔을 때 고징이 이렇게 말했다. > 어젯밤 꿈에 이 노복이 나를 찔렀으니 급히 죽여야만 하겠소. 그래서 고징은 난경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난경은 이 말을 몰래 듣고 [[안주]]를 담은 쟁반 밑에 [[도검|칼]]을 감추고 술을 마시던 고징에게 갔다. 고징은 들어오지 말라던 난경이 들어오자 화를 냈다. > 고징: 내가 아직 먹을 것을 찾지 않았거늘 어찌 서둘러 왔느냐! > 난경: 너를 죽이러 왔다! 그러고는 곧장 칼을 휘두르며 고징에게 달려들었고, 고징은 몸을 던지다 다리를 다쳐 평상 밑에 숨었으나 난경이 평상을 치우고 고징을 죽였다. 당시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때 양음은 급하게 도망치다가 신발 하나가 벗겨진 줄도 몰랐고, 최계서는 측간으로 도망쳐 숨었다. 진원강은 고징을 자기의 몸으로 덮고 난경과 다투다 창자가 튀어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고 그날 밤 죽었고, 왕굉(王紘)은 맨손으로 난경과 싸웠으며, 흘해사락(紇奚捨樂)이 싸우다 죽었다. 그의 장남 고효유(高孝瑜)는 13살로 어린 탓에 고징의 동생이자 고환의 [[차남]]이었던 [[고양(북제)|고양]]이 뒤를 이었다. 고양이 [[북제]]를 건국한 후 형 고징을 세종(世宗) 문양황제(文襄皇帝)로 추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