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종(송) (문단 편집) ===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송나라 재건 === [[휘종(송)|송휘종]]의 9남이자 [[흠종(송)|송흠종]]의 이복 동생으로 휘종과 [[현인황후 위씨]](顯仁皇后 韋氏) 사이에서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휘는 구(構)이며 광평왕(廣平王)에 책봉되었다가 이후 강왕에 책봉되어 즉위 전까지는 강왕이라고 불렸다. 고종이 강왕이던 시절, 아버지 휘종이 [[금나라]]와 강화 협상을 할 때 인질로 그를 보냈다. 그런데 '''워낙 담대하고 떳떳해서''' 금나라가 이 사람을 궁중에서 곱게 자란 황자라고 믿지 않고 다른 황족을 보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돌아올 수 있었다. [[금나라]]에 의해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송나라 황족들이 금나라로 끌려간 [[정강의 변]]이 일어날 당시, 조구 본인은 수도 개봉이 아니라 제주(濟州)에 있었기 때문에 수도가 함락되었음에도 금나라로 끌려가는 일은 운좋게 피했고, 수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곧바로 장강 남쪽으로 도망쳤다. 건강(建康)[* 지금의 [[난징시]].]에 도착한 이후 조구는 개봉에서 탈출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신료들의 추대로 황제 자리에 올랐고, 철종의 황후였던 [[소자성헌황후 맹씨|원우황후 맹씨]]가 보낸 "어서 빨리 즉위하여 나라와 종묘사직을 구하라."는 조서를 하늘에 읽어 이를 고한 뒤 무너진 송나라(남송)를 재건하고 연호를 [[건염(연호)|건염(建炎)]]으로 하였다. 사실 휘종의 9남으로 태어나서 위로는 황제로 즉위한 이복형 흠종 말고도 여러명의 이복형이 존재했고, 맏형 흠종한테도 차기 황위 계승자인 11살짜리 황태자가 있었던 만큼 조구 본인은 황제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휘종의 아들은 총 35명이고, 이중 정강의 변 이후에 태어난 3명과 정강의 변 이전 요절한 7명을 제외하면 정강의 변 당시 살아있던 휘종의 황자는 총 25명이다. 이들 모두가 남쪽에서 송나라가 재건될 때 황제 자리에 오를 만한 경쟁자가 될 수 있었으므로, [[남명]]의 제위 계승 문제가 송나라에서도 터질 법도 했는데, 휘종과 흠종을 비롯해서 '''조구를 제외한 송나라 황자들을 모조리 금나라가 잡아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왕 조구가 송나라의 남은 신료들과 백성들의 구심점이 되어 남송 조정을 조직할 적에 문제가 되고도 남았던 제위 계승 분란이 아예 생기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금나라가 송나라의 재건을 도와준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