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종(대한제국)/평가 (문단 편집) ===== 실패의 원인 ===== [[불편한 진실|본래 외교는 의리나 도덕심이 아닌 철저한 실리와 국력에 따라 성사 여부가 갈리는 것이다.]] 이미 열강들 입장에선 가난하고 근대화도 안 된 대한제국보단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열강 반열에 들어간 일본을 돕는 게 자국 이익에 여러 모로 유리했다. 당연히 열강들은 자력으로 나라를 보호하지 못해 열강에 도움을 호소하는 고종과 대한제국을 외면했다. 일본을 적극 지지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고종과 대한제국의 외교를 비웃으며 이렇게 평가했다. > 한국인들은 [[쫄보|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본인의 주먹을 휘두를 줄도 모른다]]. [[촌철살인|자국 방위조차 알아서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런 나라를 이해득실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선의로 도와주는 나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즉 [[약한 것은 죄악|스스로의 힘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있다고 믿는 고종과 대한제국의 순진함을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거듭된 승전으로 이미 서구에 '만만히 볼 수 없는 나라'라는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는 남하 정책을 추진하며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했기 때문에, 조선은 러시아의 괴뢰국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식민지나 러시아의 극동 영토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한국의 식민지화를 원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또 러시아가 식민지로서의 대한제국을 관리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시베리아도 관리하기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시키냐는 주장이다.] 당시 일본, 미국, 영국 그외 각국이 힘을 합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상황에서 한국 홀로 러시아와 친교를 도모했는데, 이러한 친러정책은 자칫 늑대를 몰아내려다가 호랑이를 불러오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결국 고종의 친러외교는 오히려 다른 열강들이 일본 지지로 더욱 쏠리는 사태를 불러오고 말았다. 다만, 고종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달리 없었는데 전통적으로 조선에서 우위를 차지하던 청나라는 [[청일전쟁]]으로 영향력을 상실했고 조선은 열강들로부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독자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만한 힘이 없었으니]] 열강의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다. 문제는 이 당시 대부분의 열강들이 조선을 지켜줄 이유가 딱히 없었다. 일본은 조선을 어떻게든 먹고자 혈안이 되어있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은 멀리 떨어진데다 일본과 충돌하면서까지 조선에서 얻을만한 이익이 없다. 그나마 러시아는 남하정책과 그 일환으로 만주를 노리고 있었고 이에 따라 치고 올라오려는 일본을 견제하려 했기에라 일본 견제라는 점에서는 조선과 러시아가 손잡을 요소는 있었다. 다만 러시아도 적극적이지는 않아서 조선 몰래 일본과 만주와 한반도를 둔 협상을 하고 최종적으론 한반도를 북위 39도를 기준으로 이남은 일본이 차지하고 북부는 중립화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려고 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