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종(대한제국)/평가 (문단 편집) ==== 실패의 과정 ==== 물론 고종이 [[아관파천]] 후 자원 채굴권 등을 열강에 판 것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기 어렵게 하는 효과도 가져오긴 하였다. 성공한 것이 러시아 공사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였고, 실패한 것이 미국 공사 [[호러스 뉴턴 알렌]]이었다. 이는 사실 시기적으로도 연결고리가 있는데, 베베르는 러일 전쟁 전까지 주 활약 시기였던 러시아 공사였고 정치적으로 영향력도 상당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고종의 외교적 접근은 [[러일전쟁]]직전까지는 효과가 아주 컸다. 반면에 알렌은 러일 전쟁 패전 이후까지 남아 있었으나, 실력에 비해서 욕심만 커 다른 선교사들과 사이가 꽤 나쁜 상황이었다. 그러한 알렌의 개인적인 성품을 감안하여도 알렌이 조선의 지배층들의 여러 행태로 인해 조선에 환멸을 느낀 상태에서 고종의 당시 행보는 [[암군|동시대의 군주들 중에서는 상당히 어리석었으며 그와 동시에 사치를 일삼았으므로]] 고종이 더 이상 이권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바로 등을 돌리고 배신해버렸다.[* 게다가 당시 미국에서는 조선의 가치를 상당히 낮게 보고 있었던 것도 알렌이 등을 돌린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만일 러일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거나, 러시아의 승리로 끝나고, 이를 미국이 승인하는 형태로 결론이 나왔다면, 고종의 매수 외교가 어느 정도 효과를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뤼순]]을 점령하는 등 러시아가 지나치게 강경하게 나갔고, 그 후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함으로써 이런 외교적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