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정운 (문단 편집) ==== [[일화 천마]] ==== 건국대를 졸업한 뒤 [[K리그/드래프트/1989년|1989년 드래프트]]에서 연고지 [[우선지명]]으로 신생팀 [[일화 천마]]에 입단하였다. 입단 동기들인 김이주, [[유승관]], [[임종헌(축구)|임종헌]] 등과 함께 [[박종환]]식 지옥의 트레이닝을 견뎠다. 약체였던 건국대시절처럼, 신생팀인 일화에선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31경기 4골 8도움을 기록할 수 있었다. 결국 1989년 '''신인왕'''에 올랐다. 그와 함께 대학 최고 윙어 자리를 두고 다투던 [[심봉섭(축구)|심봉섭]]과 [[김봉길]]이 선발과 교체를 오간 것에 비교하면 신생팀 선택은 탁월했다. 왼쪽 측면에서 저돌적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흡사 [[적토마]]를 연상케 하였고, 그의 별명이 되었다. 2년 차인 1990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며 21경기 4골 3도움에 그쳤고, 이듬해 40경기에 출장해 13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유일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그 해 커리어 첫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94 시즌은 최고 전성기였다. 월드컵에 참가하느라 21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4골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유일 두 자릿수 도움을 기록한 시즌이 됐는데, 리그 10도움은 [[이흥실]]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단일 시즌 리그 두자릿수 도움 기록'''이다. 또한, [[이흥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30-30 클럽]]'''에 가입했다. 또한 일화의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이흥실]]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신인왕 출신 MVP'''라는 기록마저 세웠다. 그 해 '''리그 MVP와 도움왕, 베스트 일레븐'''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95 시즌 시작 전, [[차범근]] 당시 [[현대 호랑이]] 감독을 통해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오퍼를 받고 독일에서 이적 협상을 진행했다. 알려진 바로 당시 이적료 3억에 연봉 1억5천만원을 제의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규남]] 일화 단장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고, 대신 연봉 1억5백만원을 받으며 [[홍명보]]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억대 연봉 프로축구선수가 됐고, 1억을 받은 홍명보의 기록을 깨며 당시 역대 최다 연봉자가 됐다. 29경기 5골 4도움으로 일화의 '''K리그 최초 3연패'''를 함께하며 2년 연속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1996년에는 어깨와 종아리 등의 부상으로 K-리그에서 12경기 4골 1도움으로 부진했지만, [[아시안 슈퍼컵]]과 아프리카 챔피언 [[올랜도 파이리츠 FC]]와 치른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을 들어올리는데 기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