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정운 (문단 편집) === 지도 스타일 === 공격수 출신답게 공격적인 축구를 주로 구사한다. 특히 측면 공격수들을 적극 이용하는데, 오프 더 볼 상황에 최전방 공격수들의 고립을 막기 위해서 측면 공격수들이 88분 동안 ‘대각선’으로 움직일 것을 주문한다. 이렇게 측면 공격수들이 측면에서 골대 쪽으로 움직임으로써 공격 숫자를 늘리는 시도를 하며, 측면 공격수들이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측면 공간은 윙백들로 매워준다. 그래서 인터뷰에서도 전술판을 그릴 때도 다이아몬드 형태로 그린다고 밝혔는데, 측면 선수들이 직선으로만 움직이면 공격이 단조로워지고, 측면 선수들이 측면에서만 움직이면 크로스에 이은 공격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었다. [[https://www.sports-g.com/2018/04/14/%EA%B3%A0%EC%A0%95%EC%9A%B4-%EA%B0%90%EB%8F%85%EC%9D%B4-%EB%B0%9D%ED%9E%8C-288%EC%9D%98-%EB%B9%84%EB%B0%80|#]][* 대표적인 예시가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측면 공격수로 뛰지만 많은 득점을 기록하는 편인데, 계속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양 감독 시절 지나치게 구시대적이고 강압적인 지도 스타일로 지도력에 의문을 드러내며, 속된 말로 '''[[꼰대]]'''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팀을 '원(one)팀' 으로 만들겠다는 이유로 선수들에게 튀는 머리나 튀는 등번호를 금지한다며 77번, 99번, [[그런거 없다|100번]][* FIFA 규정상 애초에 세자리 등번호는 달지 못한다.] 같은 큰 번호는 달지 못하게 했고, 배번을 1번~36번으로 제한하는 등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선수단으로 관리했다.[* 이로 인해 쭉 77번만 달아오던 김원민은 32번을 달아야 했고, 27번을 달았던 정재희는 11번을 달았다. 팀에서 고참에 속하는 박성진과 [[김민식(1985)|김민식]]은 35번과 36번이라는 어색한 등번호를 달아야했다.[[https://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8047|#]]] 만약 성적과 결과가 좋았다면 카리스마와 원칙을 앞세워 팀의 기강을 확립한 엄격한 지도자라고 어떻게든 포장할 수 있었겠지만, 정작 결과로는 보여주지 못하며 [[꼰대|구시대식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지식한 감독]]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리고 만일 안양에서 성적이 좋았었어도 이런 지도 스타일은 잠깐이라면 몰라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한계가 드러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인데, 현대 사회 들어서 리더로서의 덕목에 있어서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능력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축구 감독 역시 단순히 축구 전술 짜기 등의 업무만 잘한다고 다되는게 아닌게 되었다. 설령 성적과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강압적인 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은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 [[김포 FC]]의 [[K3리그]] 우승을 이끌고, 다음 해 [[K리그2]]에 데뷔하면서 위와 같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부각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FC 안양 시절 때와 다르게 튀는 머리와 튀는 등번호를 금지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인도 이런 지도 방식에 문제 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김포 FC의 선수단 구성이 주로 기존 프로구단들에서 방출된 선수들 위주라 이들에게 헝그리 정신의 동기부여를 시켰고, 이게 굉장히 잘 먹히면서 김포는 프로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고정운 감독이 안양에서 시도했으나 어설프게 구현되었던 공격 축구에 많이 뛰는 활동량을 덧입혔고, 그의 축구가 한층 진화했다는 평도 이끌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