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자 (문단 편집) === [[중국]] === [[조선]]과 달리 [[음경]]까지 절제했기에 사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보병 5천으로 기병 10만과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흉노]]에 항복한 [[이릉]]의 변호를 하다가 고자가 되었다. [[한무제]]는 사형을 선고했지만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해야 하기에 죽을 수 없어 선처를 호소했고, 그러자 무제는 '''50만 전'''[* 현재 화폐가치로 1조 원 가량의 돈이다.]이라는 거액을 바치고 평민이 되는 것과 궁형을 당하는 것과 참수를 당하는 것 중 하나를 제시했다. 사마천에게는 50만 전이라는 돈도 없거니와 당시 사기를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죽을 수도 없었다. 끝내 궁형을 택했는데, 문제는 [[음경]]의 3분의 2를 자르는 형이라 여름에는 냄새 때문에 가족조차 가까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궁형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체 훼손하면 안 된다는 [[유교]]의 덕목에 어긋나 수치감 때문에 보통 자살(自殺)했고, 그게 아니라도 음경을 절단했기 때문에 대부분 그 후유증으로 비참하게 죽어갔다. 하지만 [[사마천]]은 수치감과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끝내 사기를 완성해냈기에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그보다 3분의 2를 절단했는데 살아 있었다니 더 대단하다. 대신 평생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는데, 사마천이 그의 벗인 임안에게 보낸 편지인 <보임안서(報任安書)>에 따르면, 하루에 9번씩 장이 뒤집히며 식은땀을 흘리고 몸이 후들거려서 자신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라고 했다. * [[채륜]]은 [[후한]]의 환관으로 [[종이]]를 발명하고 제후에 봉해졌다. 한지를 '채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조등]]은 [[삼국지]]의 [[조조]]에게는 의붓할아버지로, 당대 환관계의 전설이었다. 또한 '''비록 추존이라도 [[환관]]의 신분으로서 [[중국]]의 황제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삼국지]]의 영웅들 중에서도 추존 형식으로 황제를 한 이들이 몇몇 있는데, 바로 [[손견]]과 [[사마의]]이다.] * [[십상시]]는 후한 말 조정을 가지고 논 10여 명의 [[환관]]으로 이들 덕분에 [[삼국지]]가 쓰일 수 있었다. * [[공손공]]은 [[발기부전|음경이 수축되는 고자]]라고 [[정사 삼국지]]에 남아 있다. * [[유선(삼국지)|유선]]의 소울메이트인 [[황호]]도 [[환관]]이라서 역시 고자다. * [[사마보]]는 발기부전이 있어서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한다. * [[오호십육국시대]]에 후진의 황제 요장은 다행히 죽기 전에 고자가 되었다. 진서(晉書) 요장재기에 따르면 요장의 꿈에 [[부견]]이 나와 부견의 군단과 요장이 싸우다가 꿈에서 [[귀신]]을 죽이려다가 실수로 음낭을 다쳐서 깨어나보니 그게 부어버렸다고 한다. * [[악비]]를 죽인 [[진회]]도 고자다. * [[송고종]]은 양주의 행궁에서 [[후궁]]들과 즐기다가 [[금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놀라서 후궁들을 내팽개치고 혼자서 양자강을 건너 도망갔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그 뒤 생식 불능이 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발기부전 내지 성기 내의 혈관에 이상이 생겼는지? * [[정화]]는 [[명나라]]대의 [[환관]]으로, 아버지가 [[원나라]] 추종 세력으로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끝내 그는 고자가 되었다. [[영락제]]의 명을 받아 [[동아프리카]]까지 [[남해]] 원정을 지휘했다. 일부에선 서양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도 주장한다. * [[명나라]] [[홍무제]]는 수도 남경에 궁전을 짓던 노동자 천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자 그대로 모두 거세했다. * 명나라 [[정통제]]는 [[묘족]] 남자아이 3만여 명을 대거 붙잡아와 모두 [[거세]]해서 [[환관]]으로 삼았다. * [[명나라]] & [[청나라]]대의 [[중국]] 연안 [[해적]]들은 [[소년]]을 고자로 만들어 배에 싣고 다니면서 [[성욕]]을 풀었다고 한다. * [[명나라]] 말기에 [[환관]]을 모집하자, 정원이 5천 명인데 '''2만 명'''의 고자들이 몰려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문제는, 탈락한 1만 5천 명은 짤없이 괜히 불알만 자른 실업자가 됐다는 것이다. 시험도 탈락하고 고자가 되어 사회에서 낙오해버린 이들은 도둑 떼가 되어 사회문제가 됐는데, 특이하게도 '''지나가는 행인의 불알을 움켜잡아 비틀어서 행동불능으로 만들고''' 물건을 털었다고 한다. * [[청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켰던 위구르의 지도자 [[야쿱 벡]]의 반란이 진압된 후 야쿱 벡의 미성년 자손들은 모두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다. * [[마오쩌둥]]: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1955년에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마오쩌둥은 인간의 성생활은 12세에서 60세 사이에만 가능하다는 속설을 믿고 있었는데 자신의 나이가 60세가 넘자 이 속설이 사실일까 두려워 주치의인 리즈수이에게 건강검진을 지시했다.] 불임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전립선은 건강했고 성욕, 성기능에도 문제가 없었으나 정자에 이상이 있어서 아이를 가질 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고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10명의 자식을 두어 다산한 상태였으며, 성관계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후 60년대까지 왕성한 성욕을 발휘했다.[* 서방 및 대만 언론에서는 만년에 마오의 생활비서를 한 장위펑을 첩 혹은 정부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장위펑은 1970년부터 마오의 생활비서를 했지만, 따로 결혼해 있었고 마오가 루게릭병 혹은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하던 1973년, 1976년 각각 딸을 출산했다. 후에 마오 비서생활을 하던 시절의 회고록을 출판했다.] * [[장제스]]는 33세 때 [[창녀]]와의 관계 중에 부고환염에 걸려서 자손을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성행위 자체는 가능했지만 이후 둘째 부인 천제루, 셋째 부인 [[쑹메이링]]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다. 결국 장제스의 자식은 첫째 부인인 마오푸메이 사이에서 낳은 [[장징궈]]가 전부다. 사실 장징궈도 장제스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즉, 장제스는 어릴 때 [[화로]]에 '''그곳'''을 데어 그 후로 고자가 되었고, 장징궈도 그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징궈를 보면 전형적인 [[중국집]] 아저씨 스타일로 상당한 [[미남]]이었던 장제스와는 현격한 외모 차이를 보이는데, 아무래도 부자관계로 보기는 영 어색한 면이 있는데 어머니인 마오푸메이 사진을 보면 장징궈랑 닮았다. 즉, 장징궈는 사생아가 아니라 아버지랑 너무 안 닮았다는 것 뿐이다. * [[저우언라이]]는 [[대장정]] 도중에 건강을 해쳐 역시 고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아내 덩잉차오 여사가 건강문제로 사산한 후 부부가 [[불임]]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부부 금슬은 저우언라이가 죽는 순간까지 매우 좋았다. 저우언라이는 호색이 일반화된 그 세대 중국 지도부에서도 아내만 쳐다보는 순정파로 이름 높았다. 만년에 [[방광암]]으로 여러번 수술을 하는 등 고생했는데, 만약 암이 '''그곳'''까지 전이되었다면 본의 아니게 고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