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영구 (문단 편집) == 생애 == 1939년 [[강원도]] [[정선군]]에서 태어났다. 국립체신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제12회)에 합격하였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복무하였고 [[판사]]를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강원도 [[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심명보]]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민주한국당 정책심의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심명보 후보와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신민선]] 후보에 밀려낙선하였다. 이후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여 [[이돈명]], [[황인철]], [[홍성우(1938)|홍성우]], [[조영래]] 등과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의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였다. 양김 단일화에 실패하고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자 1988년 [[예춘호]], [[조순형]]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8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창설하고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민주정의당 [[김명섭]]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구 을|을]] 재보궐선거에 범민주대책위원회의 추천으로 범 재야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나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91년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꼬마민주당이 [[평화민주당]]의 후신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이 출범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국가정보원]][[국가정보원장|장]]을 역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