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야슬레 (문단 편집) == 생애 == 1863년 1월, 제로니모는 자신의 부족 Bedonkohe의 부족장이었던 Mangus Colorado가 미국인들과의 평화협상을 위해 떠났다가 살해당한 이후, 부족의 족장으로 선출된다. 극소수의 아파치 전사들[* 제로니모 전쟁 시기 아파치 전사 집단은 보통 많아야 수십 명 이내의 소집단으로 활동했다. 10명 이하인 경우도 많았으며, 보통 리더라고 할만한 사람도 따로 없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말도둑떼에 가까운 것이 당시 아파치 게릴라였다.]과 함께 수많은 기병대를 유린하며 이주민들의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며 악명을 떨쳤다. 이런 공포는 황색언론 때문에 벌어졌는데, 제로니모 전쟁이 원래 도망다니는 아파치 수십 명을 기병대 수천 명이 수색하고 다니는 정도에 불과한 작은 전쟁이었지만 공훈을 내세우고 싶은 군인들과 특종을 내고 싶은 기자들의 욕망이 뒤얽히면서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다. 실제로 제로니모 전쟁으로 죽은 미국인은 거의 없고, 아파치 전사자는 더 적었다. 그러나 제로니모는 결국 항복해서 포로가 되어 플로리다로 이송되었다가 1887년에 앨라배마 주로 다시 이송되면서 헤어진 가족들과 재결합했고 7년간 있다가 오클라호마 주의 실 요새로 다시 이송되었다. 말년의 제로니모는 그래도 나쁘지 않는 삶을 살았는데, [[1904년]]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에 나가기도 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 행진에도 참여했다. 단,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건 허락이 되지 않았다. [[1905년]]에는 자신의 [[자서전]]을 남겼는데 자신이 말하고자 싶은 바만 정확히 반영되도록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처음에는 만국박람회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위험하지 않을 것이며 충분한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하자 일요일마다 서부 쇼에 나가서 밧줄 묘기를 했다. 그 외에도 [[관람차]]를 타고 자신의 사진과 기념품을 팔기도 했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나 [[알코올 의존증]] 및 [[마약]] 중독설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알코올]] 의존이 수용소에서 생겼다는 것은 완전한 루머다.[* 아파치족은 본래 16세기 말부터 티스윈이라는 [[술]]을 마셔 왔으며, 제로니모도 당연히 젊은 시절부터 티스윈을 마셔 왔다. 제로니모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전쟁인 1886년 2차 제로니모 전쟁은 당시 아파치 문제 책임자였던 크룩 장군과의 명예로운 협상 결과 영웅이 되어 돌아온 보호구역에서 오랜만에 전우회(...)를 열었다가 티스윈을 너무 많이 마셔 만취한 나머지 '''우리 잠깐 나가서 멕시코 놈들 말이나 훔쳐올까?'''라며 의기투합해서 집단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됐을 정도였다.]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타탕카 이요탕카]]이다. 제로니모는 실제로는 [[1909년]] 2월에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서, 친구가 발견할 때까지 하룻밤 내내 추운 밖에 누워있었던 탓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죽기 직전에 "나는 항복하지 않았어야 했어. 나 혼자만 남을 때까지 계속 싸웠어야 했는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시신은 실 요새의 아파치 전쟁 묘지에 묻혔으나, 20세기 초[* 1918년 쯤.] 그의 무덤이 도굴되고 두개골이 도난당하는 불운이 이어졌다. 범인으로는 [[예일 대학교]]의 학생 클럽이 유력하지만[* 해당 클럽은 굉장히 비밀스럽기로 유명한 클럽이라고 한다.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 의하면 외부에는 '해골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가입 조건은 불명이나 가입 의식 중 자기 성 경험을 폭로하고 해골에 입을 맞추는 등 기묘한 행동을 해야 하며, 해골단 멤버들이 미국 정계와 경제를 독점하며 이름이 알려졌다 한다. 다만 차트를 달리는 남자가 원래 찌라시를 잘 다루고, 해골단을 다룰 때도 단순 음모론일 수 있다며 경고를 했다는 점은 알아 두자.] 해당 클럽은 모르는 일이라고 아직까지도 부인하고 있다 한다. 제로니모의 두개골도 그들이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묵묵부답중이라고.[* 해골과 함께 그의 유품도 소장했다고 하며, 무슨 의식에 사용했다고. 이 학교 재학생인 프레스콧 부시가 용의자라고 파악된다고 한다. 프레스콧 부시는 미국 부자 대통령인 그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와 조부쯤 된다. 게다가 아파치족은 도난당한 걸 1981년도쯤에 알게 되었고, 찾기 위해 예일대에 방문했지만 엄한 해골을 내놓기에 그걸 인수 거부하였다고 한다.] [[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090219000369 |'우리 할아버지 유골 돌려줘요' 제로니모 후손 예일대에 반환 소송]]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