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사기 (문단 편집) == 상세 == 그 내용은 [[천황]] 가문의 계보, 그리고 그에 얽힌 신화와 전설이다. 상권은 천지개벽과 [[아마츠가미]] 및 [[쿠니츠가미]] 등 신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중권은 초대 천황인 [[진무 덴노]]부터 15대 오진 덴노까지, 하권은 16대 닌토쿠 덴노부터 33대 스이코 덴노까지 다루었다. 고사기를 편찬한 사유를 설명하는 현전하는 문서는 고사기 서문이 유일하다. 이에 따르면 본래 [[히에다노 아레]](稗田阿礼)가 송습, 즉 암기해 읊은 내용을 오노 야스마로가 받아 적어 712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일본 신토계에서는 [[일본서기]] 중 신대기 관련 부분만을 경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고사기에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후대에 들어 일본서기는 순수한 일본적인 사상이 아닌 외래 중국물이 들었다고 비판하고, 고사기야말로 순수한 일본정신이 깃든 고문서라는 주장이 퍼지면서 두 책의 평가가 뒤바뀌기도 하였다. 에도 막부 시절 [[국학(일본)|국학]](國學)이 일어나자 국학자들이 고사기를 두고 헤이안 시대 이후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런 주장이 나올 만도 했다. 원본이 유실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본이 남북조시대라 일단 100% 조작인지는 둘째치고 원본과 얼마나 비슷한지 판별이 불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고사기의 표현이 이미 당시부터 있었던 표현임을 밝힘으로써 위작설은 폐기되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고사기가 최초의 원본을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도리가 없다. 오노 야스마로는 관련 기록이 일본서기 일부에만 있어 과연 실존인물이었는지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1979년 [[나라현]] [[나라시]]에서 야스마로의 무덤이 발견되어 학자들이 조사한 이후로 실존인물임이 확실해졌고, 따라서 고사기의 신빙성 역시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일본]] 최초의 역사적 문헌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신화]]에 가깝다. 학자들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화를 합쳐서 '기기신화(記紀神話)'라고 부른다. 흔히 일본신화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기기신화다. 하지만 기기신화는 야마토 조정이 명백하게 정치적 의도로 정리하고 변경했다. 따라서 기기신화가 고대로부터 이어진 원형적인 신화라고 볼 수는 없다. 일본신화 중에 기기신화도 있다고 생각함이 더 정확하며, 기기신화에서 드러나는 정치적인 의도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고사기를 [[일본어]]로는 일반적으로 '''코지키'''라고 읽지만 사실 올바른 방법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후루코토(노)후미'''라고 읽기도 한다. 참고로 '코지키'는 '밥 빌어먹는 행위'를 뜻하는 '걸식(乞食)'와 발음이 같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관계는 한국으로 치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국사로 따지면 [[삼국유사]]와 [[화랑세기]] 필사본의 중간단계쯤 되는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사학자들에게는 역사책이라기보다는 고대신화집 정도로 통하는 서적이다. 실제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3세기 이후를 다룬 고사기 하권은 왕위계승과 관련된 내용을 최소한으로만 적어 매우 빈약하다. 그러다보니 역사 연구에서 [[일본서기]]가 우선이고 고사기는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점에선 중국의 [[산해경]]과도 비슷하다. 그뿐만 아니라 기록한 신화도 야마토 조정이 위치한 간사이 지방의 전승을 주로 반영하고 그 외 지역에서 전승된 신화를 따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기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 입장에서도 이리저리 분석할 여지는 일본서기 쪽에 더 많으므로, 일본서기의 전승들을 중심으로 다루되 고사기 신화와 비교하는 식으로 연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